-
20년 전 우당탕탕일상 이야기 2023. 11. 29. 15:27
다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쓰려고 하니 글이 술술 풀리지 않았다. 마치 오래되어 뻑뻑해진 기계기름처럼 답답하게 흐르다가 막히곤 했다. 내가 옛날에는 글을 좀 더 쉽게 썼던 것 같아서 옛 글을 하나 찾아봤다. 게시판에서 친구들에게 고자질하듯 쓴 글이니 아마 그 자리에서 후루룩 써서 검토도 안 하고 올렸을 것이다.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가볍게 읽혔고 느낌이 경쾌했다.
2005년이니 아들이 17세, 딸이 14세 되던 해에 쓴 글이다. 우리 부부가 사춘기 아이들과 가사협조 문제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다. 다 지나가서 잊고 있었지만 우리도 아이들 키우면서 참 힘들었다 싶었다.
신랑의 가출 (2005년)
며칠의 모임을 끝내고 마지막 날 프랑스 파리에서 집으로 가는 밤기차를 타기 전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딸아이가 받아서 아빠는 어디 나갔다고 했다. 이 밤에? 어디로? 몰라. 그냥 나갔어. 나랑 싸웠어. 내가 쪼금 더 잘못하긴 했지만 아빠도 잘못했어. 어쩌고 저쩌고 미주알고주알.
늦은 아침에 집에 도착해서 신랑에게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무척 반가워하며 아직 아침을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고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방금 출근했을 사람이 나랑 커피 한 잔 마시려고 집으로 오겠다는 게 이상했다. 뭔가 내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이른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의 사연을 들었다. 아이들이랑 집안일 문제로 싸우고 너무너무 화가 나고 아이들이 얄미워서 무작정 집을 뛰쳐나갔더니 갈 데가 없더란다. 그래서 자전거로 시내를 하염없이 쏘다니다가, 역에 가서 내가 이튿날 몇 시에 도착하는지 표지판을 들여다보다가,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 먹고 아주 늦게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그날 밤 내가 파리에서 전화할 적에 딸아이가 자기 걱정을 하더냐고 묻길래 무심코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 바른말을 했더니 막 화를 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놓고 나갔는데 이놈들이 빨래도 널지 않고 그냥 잤다며, 자기가 그것까지 다 널고 잤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이 깨기 전에 아침도 안 차리고 그냥 회사로 뺑소니쳤다고 했다. 저렇게 파렴치한 아이들이랑은 이제는 밥도 같이 먹지 않을 거라고 하는 걸 보니 정말 삐져도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별 일도 아닌 일에 아빠가 오버한다는 식이었다.
우리 가정에서 아이들의 가사협조 문제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숙제였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거기에 맞춰 달라져야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뭔가 변화가 하나 일어나면 부모로서 거기에 적응하기 힘겹다. 게다가 적응하자마자 그새 아이들이 또 자라서 새로운 적응을 요구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을 뒤쫓으며 늘 한발 늦게 새 상황에 맞는 가정교육을 고민하고 허겁지겁 실천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부모다.게다가 우리 집에서 자녀 가사분담은 나와 신랑 사이의 갈등이 맞물려 해결이 요원한 테마였다. 그간 신랑은 '그건 네 문제니 네가 혼자 알아서 해결하라'라고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신랑이 화가 나서 씩씩거릴 때 나는 쌤통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고소함을 조금밖에 표현하지 않으려고 나는 아주아주 많이 참아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씩씩거리는 신랑 모습은 어딘지 익숙한 모습이 아닌가? 그게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나도 아이들과 싸움이라도 한 밤에는 치미는 화를 어쩌지 못해 무작정 뛰쳐나갔다가 갈 데가 없다는 사실에 얼마나 회한스러웠던가? 더욱 비참해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별 일도 아닌 일에 엄마가 오버한다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리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나는 이런 신랑을 향해 자매애가 모락모락 솟아오름을 느꼈다. 신랑은 이 문제를 기필코 해결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니 덕분에 나는 손도 안 대고 코 풀게 생겼다. 우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