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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아이펠을 거쳐 아헨까지Our Journey 2025. 6. 17. 01:34
저희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와 배를 이용해 한국을 거쳐 호주로 향하는 긴 여행을 앞두고 있어요.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위해, 대략적인 소식이라도 전해보려고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랍니다. 실험삼아 작년 2024년 7월에 다녀온 탄뎀 여행을 보여드릴게요. 더 많은 사진과 여정은 안트가 여행 기록 앱으로 정리해봤어요. 지도에 우리가 달린 경로가 표시되고, 사진과 글을 함께 담을 수 있어서 여정을 공유하기에 좋은 앱인 것 같아요. 안트가 독일어로 간단한 설명을 써두었어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쉽게 번역하시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크롬 브라우저에서 구글계정에 로그인 한 후에 이 사이트를 열어요. 오른쪽 상단이나 하단의 점 세 개(⁝ 또는 ...)를 누르면 아래쪽에 ‘번역’이라는 메뉴가 보여요. 그걸 누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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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민의 – 독일에서사회 이야기 2025. 6. 16. 22:17
1998년 독일 총선은 긴 터널 끝의 출구였다.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보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의 16년 장기집권은 통일 이후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을 극복하지 못했다. 침체와 정체가 이어지며 콜 총리를 풍자하는 개그만 넘쳐났다. 정권 교체의 열망은 컸지만, 기독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막강한 다수당이었다.우리 부부는 투표 전날까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한국 국적자로 독일에서 선거권이 없었기에, 독일인인 남편은 늘 내 의견을 물어 ‘우리의 한표’를 행사하곤 했다. 우리는 한결같이 녹색당을 지지했지만, 그때만큼은 예외였다. 남편이 먼저 예외를 제안했다.“이번에는 사회민주당(SPD, 중도 좌파)에 표를 몰아줄까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지역구 투표 뿐 아니라 정당 투표에서도 사회민주당을 찍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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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과 방화벽사회 이야기 2025. 6. 16. 21:43
나는 50년 전, 고등학교 시절에 독일로 왔다. 1970년대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고, 북한보다 못 살았다. 그 때도 나는 조국이 부끄럽지 않았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가 있었기에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기던 군사독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지만, 불공평과 독재에 목숨 걸고 항거하던 한국 국민들은 조국에 대한 나의 자긍심을 더욱 높여주었다.그러다가, 처음으로 조국이 부끄럽게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었다. 한반도를 세로로 가르는 대운하를 만들려다가 국민들이 반대하니 ‘4대강 복원사업’이라고 이름만 바꿔 강행한 대대적인 토목공사는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어서 대한민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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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뮌헨 집회 12월 7일사회 이야기 2024. 12. 5. 03:33
베리의 벗님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어제 다들 놀라셨지요? 계엄군에 국회가 장악되는 위협적인 순간에 담을 뛰어넘어 신속하고 적법하게 계엄령을 무력화하는 국회의원들을, 무장한 계엄군과 맨몸으로 대치하며 국회를 지켜낸 시민들의 눈부신 활약을 우리는 멀리서 화면을 통해 보았습니다. 한국의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추운 야밤에 방방곡곡에서 삽시간에 모여들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한달음에 여의도로 달려갔을 겁니다.고국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준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리고 더 지체하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위식에서, 해외에 사는 우리도 모이기로 했습니다. 만나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습니다.뮌헨에선 돌아오는 토요일 12월 7일 오후 3시에 시내 한복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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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우당탕탕일상 이야기 2023. 11. 29. 15:27
다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쓰려고 하니 글이 술술 풀리지 않았다. 마치 오래되어 뻑뻑해진 기계기름처럼 답답하게 흐르다가 막히곤 했다. 내가 옛날에는 글을 좀 더 쉽게 썼던 것 같아서 옛 글을 하나 찾아봤다. 게시판에서 친구들에게 고자질하듯 쓴 글이니 아마 그 자리에서 후루룩 써서 검토도 안 하고 올렸을 것이다.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가볍게 읽혔고 느낌이 경쾌했다. 2005년이니 아들이 17세, 딸이 14세 되던 해에 쓴 글이다. 우리 부부가 사춘기 아이들과 가사협조 문제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다. 다 지나가서 잊고 있었지만 우리도 아이들 키우면서 참 힘들었다 싶었다. 신랑의 가출 (2005년) 며칠의 모임을 끝내고 마지막 날 프랑스 파리에서 집으로 가는 밤기차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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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에 꾸는 꿈일상 이야기 2023. 11. 25. 05:44
내가 막 독일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어떤 한국사람이 독일에 온지 10년이 되었다고 하길래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어떻게 외국에서 10년이나 죽지 않고 살 수 있지?"그 후로 50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죽지 않았고, 독일 흉을 적당히 보면서,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사무치게 그리워하지도 않으며 늙어가고 있다. 한창 왕성하게 일할 때는 영원히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았던 은퇴도 했다. 나이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노년에 대한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호기심 나고 기대되어 1년이나 앞당겨 은퇴했다.은퇴하고 보니 정말 새 세상이 열렸다. 독서, 바느질, 산책, 봉사활동 등 돈 안 들이고 즐길 수 있는 재미난 일이 널리고 널린 일상이 행복하다. 여행과 문화활동을 비수기를 이용해 저렴하고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