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니에게 가는 길, 여행 하루 전 2025/6/25
내일 아침이면 우리 부부는 긴 여행을 떠난다. 비행기를 안 타고 기차와 배, 버스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한국을 경유해서 호주로 가는 여정이다. 이유와 목적은 매우 단순하다. 남편은 탄소중립을 위해서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내의 나라 한국에 가보거나 호주에 사는 딸네 부부와 손주를 보러가려면 기차와 배,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그의 신념을 존중하기 때문에 기꺼이 이 여정에 동참한다. 나는 남편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신념에 어깃장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가끔가다 살기 힘들면 나도 시비 걸고 양양거리기는 하지만 그건 인생의 양념 아닌가?)
원래는 베를린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 열흘 쯤 걸려 블라디보스톡까지 가서 거기서 배 타고 한국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러시아에 돈 보태주기 싫어졌다. 그래서 동유럽에서 터키, 거기서 조지아, 우즈베키스탄, 카작스탄, 중국으로 가는 실크로드를 따라가기로 했다. 중국에선 배 타고 한국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오늘 경로를 다시 확인해보다가 아쉽게도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 구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러시아, 이란, 아르메니아 같은 분쟁국가들 사이를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조지아랑 아제르바이잔을 통과하는 루트인데, 문제는 아제르바이잔이 육로 국경을 아직까지 닫아 놓고 있다는 거다. 비행기로 들어가는 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럴 바엔 조지아에서 비행기 타고 조금 더 날아서 카스피해를 넘어 바로 우즈베키스탄으로 가기로 했다.
한국에 도착하면 남편과 호젓하게 시골생활을 즐기고 단풍 고운 철에 등산을 다니다가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다시 남반부를 향해 떠날 것이다. 중국, 라오스, 싱가폴,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가서 거기서는 호주 다윈 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호주에선 국경을 항공편으로만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다윈에서 기차와 버스로 호주 대륙을 해안선 따라 휘돌아 멜버른에 도착하여 그리운 가족을 상봉하는 시나리오다.
돌아오는 길은 같은 루트로 택하기로 했다. 갈 적에 아쉽거나 미진하게 남겨뒀던 곳을 올 적에는 제대로 돌아볼 수도 있고, 흥미 없는 부분은 건너뛸 수도 있어서 좀 더 편안하고 효율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한 1년 쯤 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지금 미리 알 수 없다. 이런 여행은 처음 해보는 거라 중간에 일이 생기면 여행이 더 늦어지거나, 일부분 생략되어 더 빨라지거나, 아예 포기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냥 다 열어놓고 닥치는 대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늘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우리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번 여행이 특히나 더 의미있고,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 기차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서 1박하고 이튿날 루마이아 부쿠레슈크로 밤기차 타고 가는 여정까지만 예약을 마쳤다.
이번 여행은 가보고 싶은 곳을 우리 스타일로 가보는 평소 생활의 연장선이라서 아마 그다지 럭셔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다페스트 호텔 예약은 내가 하고 부쿠레슈크 밤기차 예약은 남편이 했는데 미리 의논한 것도 아닌데 둘 다 가격이 서로의 마음에 들게 적정했다.
어제 짐은 다 싸놓았고, 오늘은 청소를 깨끗하게 해놓는 숙제만 남았다.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간간히 소식 전할게요. 아래 글에서 소개한 <펭귄을 찾아라>에서 여정과 사진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팽귄을 찾아라> 여행기 사이트에 이번 여행에 관한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이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trip/685d047694cb79-52588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