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니에게 가는 길 21일 - 하투샤 2025/7/16Our Journey 2025. 7. 14. 13:35
안트:
오늘은 할 얘기가 참 많다. 세 가지 주제가 있는데, 첫째는 사진에 대한 간단한 설명, 둘째는 하투샤 근처 지역의 경제 상황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곳에서 자꾸만 생각나게 되는 주제, 바로 문명의 붕괴에 관한 이야기다.
<사진 설명부터>
하투샤 유적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성벽의 한 구간을 복원해 놓은 것이었다. 고대에 사용했던 기술만 써서 복원한 이 실험고고학의 사례는, 당시 만들어진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을 바탕으로 재현했다고 한다.입구를 지나면 큰 신전 터가 나오는데, 대부분의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석으로 된 기초만 남아 있다. 예전에는 그 위에 나무와 진흙으로 된 구조물이 있었는데, 나무는 구리 도구로 돌에 구멍을 뚫어 고정시켰다고 한다. 이 신전에는 ‘녹색 돌’이라는 특이한 돌도 있었다. 이 돌은 예전엔 이집트에서 온 거라는 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 지역에서 나는 평범한 돌이라고 한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길을 따라 오르막이 계속 이어졌고, 우리는 총 6km 정도 되는 코스를 둥글게 돌며 약 300m 정도를 등반했다. 걸린 시간은 5시간 조금 넘었다. 다행히도 기온은 30도 정도였지만,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꽤 힘들었다.
가는 길에는 성벽의 기초와 성문들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사자문, 스핑크스문, 왕문 같은 것들이었다. 스핑크스문에는 안팎으로 각각 두 개씩, 총 네 개의 스핑크스 조각상이 있었단다.
1907년 대규모 발굴 당시 안쪽 스핑크스 두 개는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는데, 하나는 이스탄불로, 하나는 수리를 위해 베를린으로 보내졌다. 그런데 그 뒤로 제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동독 시절까지 거치면서 돌이 오랜 시간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1990년 이후 터키에서 강하게 반환을 요구했고, 무려 2011년에야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은 두 조각상 모두 Boğazkale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유적지에는 흰색 복제품이 놓여 있다.
위쪽에 위치한 유적지는 나중에 지어진 곳인데, 따로 성벽이 둘러져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는 흙으로 둑까지 쌓아 방어를 강화했고, 그 꼭대기에는 밖으로 통하는 터널이 있다. 이런 터널을 ‘포테르네’라고 하는데, 여러 개 중 지금까지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건 이 하나뿐이다. 꽤 인상 깊었다.
우리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동굴도 지나쳤는데, 그중 하나는 복원되었다. 이때 그 주변에서 발견된 돌들을 퍼즐하듯이 맞췄다. 이 돌들에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저녁에는 보아츠칼레(Boğazkale) 박물관에 갔다. 작고 아담하지만, 히타이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꽤 괜찮은 박물관이었다.
<보아츠칼레 마을 이야기>
하투샤는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때는 관광객이 많아 지역 주민들도 꽤나 잘 살았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그 당시에 왔다면 유적지 입구에서 많은 택시 기사들이 우리에게 가이드 투어를 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우리가 오랜 하이킹 끝에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소를 돌보고 있던 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조금 영어도 하셨는데, 예전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이드를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일이 없단다. 예전엔 이곳이 초록으로 가득하고 물도 많았지만, 지금은 기후 변화 때문에 너무나 건조해졌다고 씁쓸하게 말하셨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예약 가능한 유일한 호텔에 묵었는데, 그것도 좀 쓸쓸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거의 유일한 손님이었고, 마을에는 다른 숙소들도 있었지만 서로 경쟁하다 보니 다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한 프랑스 영화 촬영팀이 와 있었는데, 젊은 터키인 가이드가 우리 호텔 주인의 사촌이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가 제안을 받고 촬영팀 전체가 그쪽 숙소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 호텔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이곳을 이렇게까지 꼼꼼히 둘러보지 못했을 거다. 호텔 주인 아저씨는 영어도 꽤 잘하시고,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 호텔도 혼자서 운영하신다고.
<청동기 시대의 문명 붕괴>
히타이트 제국의 전성기는 기원전 1380년부터 1200년 사이였다. 남쪽으로는 오늘날 시리아 중부까지 뻗어 있었고, 이집트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두 나라가 맺은 평화조약은 기원전 1259년에 작성된 문서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조약이다. 유엔 건물에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 제국은 갑작스럽고 빠르게 붕괴했다. 그런데 이 시기는 히타이트만이 아니라, 동지중해와 그 너머의 대부분 문명들이 함께 무너진 시기이기도 하다. 아시리아와 이집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고, 그마저도 크게 약화된 상태로 겨우 살아남았다.
왜 이런 대규모 문명의 붕괴가 일어난 걸까?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는 그런 붕괴를 피할 수 있을까?
그 당시 수많은 제국과 왕국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활발한 무역과 문화 교류, 인구 이동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자원은 ‘주석’이었다. 오늘날의 석유처럼, 청동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했던 자원이었다. 주석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었고, 먼 거리를 넘어 거래되었다. 모두가 이 무역에 참여하고 이익을 얻었으며, 그 청동으로는 대부분 무기를 만들었고, 그 무기로 서로 전쟁을 벌였다.
문명의 붕괴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Paul M. Cooper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자 팟캐스트인 "The Fall of Civilizations" 를 추천하고 싶다. 그 중 ‘청동기시대 붕괴’ 편은 꼭 들어볼 만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당시 문명을 위협한 세 가지 큰 요인이 있었다.
첫번째는 이른바 ‘해양 민족’이다. 지중해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해상 세력으로, 이들은 강력한 함대를 이끌고 갑작스레 주요 항구 도시를 습격해 초토화시켰다. 어디서 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사르데냐 등 서지중해 지역이라는 설이 있다. 해안 도시들의 몰락에는 이들이 큰 역할을 했지만, 내륙 도시인 하투샤 같은 곳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두번째는 철기 시대의 도래다. 혼란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철이 개발되면서 무기의 질이 향상되었고, 긴 무역망 없이도 생산이 가능했다. 덕분에 소규모 세력도 강력한 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기존의 거대한 제국들과 맞서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차례의 대립이 있었고 그것이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세번째는 기후 변화, 특히 대가뭄이다. 이로 인해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다. 멀리 아이슬란드의 헤클라(Hekla) 화산의 대규모 폭발(Hekla 3)이 그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 세계의 나이테 분석 결과, 이 시기에 약 20년간 나무 성장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고도 문명들이, 식량과 자원의 부족, 새로운 전쟁 기술, 그리고 대규모 자연 재해에 의해 동시에 타격을 입었다. 해양 민족도 어쩌면 먹고 살기 위해 더 나은 땅을 찾아 나선 피난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경제 시스템 속에 살고 있고, 자원과 식량의 부족, 기후 변화, 재난의 빈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미 많은 자원은 고갈되었고, 기후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문명을 지탱하는 결속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고, 전쟁은 다시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복잡한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복합시스템이 한계를 넘으면, 붕괴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난다고 한다.
이탈리아 물리학자이자 블로거, 로마클럽 회원인 우고 바르디는 이 현상을 ‘세네카 효과(Seneca Effect)’라고 부른다. 로마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장은 천천히 일어나지만, 몰락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혜지:
본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 매우 촘촘한 하루였다. 안트는 미리 예습을 해왔는데도 하투샤 유적지 매표소에서 책까지 사서 또 읽으면서 내게 죄다 설명해줬다. 나는 처음에는 어제의 피곤이 가시지 않아서 호기심이 덜했는데, 안트의 설명을 들으니까 점점 알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나중에는 좀 자세히 조사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돌을 만지고 그 밑을 파보려고 하다가, 아차 이건 남의 발굴이지 싶어서 얼른 손을 털고 내려왔다.
피곤해서 박물관에는 안트 혼자 가라고 하려다가 나 역시 욕심이 나서 따라나섰다. 안 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오늘 본 유적지에서 이렇게 예쁜 물건들이 나왔다니! 이 유적지 발굴팀이 부러웠다.
호텔 주인아저씨가 저녁에 차를 같이 마시자고 초대하셨는데 나는 너무 졸려서 사양했다. 안트한테 당신이라도 가서 얘기도 듣고 대화해보라고 그랬더니 자기는 아저씨보다 나랑 대화하는 게 더 좋다고 안 갔다. 내 몸을 혹사해서 머리를 즐겁게한 하루가 이렇게 갔다. 다음에는 짐 들고 이동할 때 많이 걷지 말고 되도록 택시를 타서 관광할 때 필요한 기운을 비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래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원문인 독어 버전을 올렸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이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trip/685d047694cb79-52588612
'Our Journe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니에게 가는 길 23일 - 오르두 2025/7/18 (0) 2025.07.17 피니에게 가는 길 22일 - 오르두로 이동 2025/7/17 (0) 2025.07.17 피니에게 가는 길 20일 - 하투샤로 이동 2025/7/15 (0) 2025.07.14 피니에게 가는 길 19일 - 앙카라 2025/7/14 (0) 2025.07.14 피니에게 가는 길 18일 - 이동 2025/7/13 (0)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