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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V - 한국으로Our Journey 2026. 4. 21. 10:35
안트: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티켓도 다 사두었고, 호텔도 전부 예약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상하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가던 중, 우리가 탈 예정이었던 페리가 운항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안개 때문이라고 했다. 선박회사에서 온 안내 문구는 사실상 선택지가 하나뿐인 것처럼 쓰여 있었다. 여행을 취소하고 환불을 받으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들국이는 안개는 핑계일 뿐이고, 실제로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꽤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우리는 칭다오까지 가는 첫 번째 기차는 그대로 탔다. 원래 그곳에서 페리를 탈 예정이었고, 어쨌든 목적지에 훨씬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밤에 묵을 호텔도 그대로 이용했다. 칭다오에는 밤 10시쯤 도착했기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는 대안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가는 페리는 여러 항구에서 출발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칭다오에서 멀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옌타이를 선택했다. 칭다오보다 북쪽으로 기차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다음 날 옌타이로 가는 기차표는 금방 구할 수 있었지만, 페리 티켓은 여전히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그곳까지 가서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로 했다. 잘만 되면 원래 계획했던 시간과 비슷하게 한국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해냈다. 다행히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가 탄 페리는 결과적으로 완전히 만석이었던 것 같았다.
들국:
배를 타기로 한 다음날, 칭다오에 안개는 없었다. 그날 가시거리는 10km로, 항해를 금하는 1km의 열 배나 좋은 조건이었다. 칭다오 배가 못 가는 데는 분명히 다른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인상의 첫 후유증이 아니기를 바란다.
칭다오에서 아침 식사 후에 기차를 타고 옌타이로 갔다. 이제 옌타이 항에 가서 표를 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놓았으니 그 다음 일은 우리가 걱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서 나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었다. 안 되면 비행기를 타도 되고, 그것도 안 되면 한국에서의 일정을 미루면 된다. 귀찮고 돈이 들어서 그렇지, 사람이 죽고 살 일은 아닌 것이다.
옌타이 역에 내려서 안트의 빠른 걸음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서 항구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이 전부 칭다오에서 같은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들 역시 갑자기 칭다오 배가 뜨지 않으니 이쪽으로 온 것 같다.
안트가 서두른 덕분에 매표소에 앞줄에 서서 표를 사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영어가 하나도 안 통해서 나는 파파고 번역기에 미리 써간 문장을 내밀었다. 담당하는 젊은 여성은 친절했지만 우리 여권을 번역기로 스캔해서 낯선 언어를 타자 치느라고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다. 단 한 창구만 열렸기에 우리 뒤로 줄이 점점 길어졌고 나는 뒤통수가 무척 따가웠다.
나는 번역기에 가능하다면 2인실을 원한다고 썼는데, 담당자가 번역기를 통해 내게 물었다. „두 사람이 방 두 개를 나눠 써도 됩니까?“ 나는 그게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안트도 일단 아무렇게라도 배를 타고 보자고 했다. 실은 우리는 2인실이 없으면 엄청 비싼 스위트룸을 하자고 우리끼리 말 맞춰놓고 있었지만 말도 꺼내지 못했다. 소통이 힘든데다 우리 때문에 뒤에 줄이 너무 길어져서 미안하고 초조했기 때문이다.
승객의 대부분이 젊은 중국여성들이어서 의아했다. 한국으로 최신 유행을 좇아 쇼핑 가는 중국 관광객이 많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듯했다. 이 젊은 여성들의 활기찬 태도라던가 자유로운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이 왠지 뷰티관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700석 배가 만석이었는지 승객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출국수속를 비롯한 모든 절차를, 버스 한 대에 들어갈 인원수에 맞게 나누어서 효율적으로 진행한 덕분에 번잡한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거의 20분쯤 달려서 드디어 배에 올랐다. 배는 지난번에 우리가 탔던 칭다오 페리보다 훨씬 현대식이었다. 중국인 직원들이 한복을 입고 웃으며 맞아주었다.
우려했던 대로 안트와 나는 따로 떨어져서 각각 2인실에 배치되었다. 우리는 슬펐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둘이 의지하고 있다가 단 하루밤이라도 떨어지려니 막막했다. 나는 괜히 안트가 걱정되기도 하고, 길눈이 어두운 내가 꼬불꼬불한 선상의 미로를 통해 안트 방을 찾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긴장되었다. 망망대해에선 인터넷도 없으니 서로 연락할 방법도 없는데. 안트는 이 배의 2인실이 깔끔하고 예쁜데, 우리가 한 방이었으면 창가 다탁에서 차를 마시며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며 아쉬워했다. 우리는 되도록 밖에서 만나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배에서 제공하는 무료 저녁식사는 맛도 좋고 야채 반찬도 풍성했다. 승객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직원들이 도열해서 뷔페를 일률적으로 배식해주는 시스템이었는데, 기계적으로 한 접시를 가득 채워주었다. 음식은 한국사람 입맛에 딱 맞고 맛있었느나 양이 너무 많아 나는 반쯤 남겼다. 저녁식사 후에 로비에서 인절미를 같이 찧어서 나눠먹는 행사가 벌어졌다. 발랄하고 개성있게 옷 입은 소녀들이 앞머리에 클립을 하나씩 달고나와 흥겹게 구경하다가 맘이 내키면 떡을 찧었다. 그렇게 완성된 떡은 콩고물을 묻혀서 모든 구경군에게 돌렸다. 우리도 두 쪽을 먹었다.
내 룸메이트는 젊은 중국여성이었다. 한국으로 팬미팅을 하러 혼자서 길을 떠난 씩씩한 젊은이였다. 드라마를 보며 배웠다고 하는데 한국말을 정말 잘했다. 나는 그간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풀렸다. 기회를 만나서 꼬치꼬치 다 물어봤다.
이 친구가 한류 단톡방에서 들은 소식에 의하면 칭다오-인천 여객선은 벌써 한달 전부터 안개를 이유로 운행하지 않았고, 그런데도 꾸준히 표를 팔고 환불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나중에 인천항에 내렸을 때 안트가 칭다오-인천 여객선 창구에서 여전히 표를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 창구에 가서 우리가 겪은 일과, 내가 배에서 중국인에게 들은 사실을 담담하게 알려줬다. 죄 없는 담당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책임을 물을 의도는 전혀 아니었고, 단지 고객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룸메이트는 이튿날 인천에서 케이팝 아이돌들의 팬미팅과 콘서트가 열린다고 마음이 들떠있었다. 내일 저녁에 비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랬더니 활짝 웃으며 그까짓 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자신들이 팬덤하는 아이돌을 만나는 저 벅찬 마음을 나는 어렸을 때 어떤 상황에서 경험했던가?
룸메이트는 나를 만나자마자 언제 잠을 자는지 물어봤다. 소등 때문에 신경이 쓰였나 보다. 그래서 나는 눈가리개를 하고 귀에는 이어폰 꼽고 잠을 자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잘 수 있으니 당신은 자유롭게 할 일 하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욕실을 오래 편하게 쓰라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잠 잘 채비를 마치고 먼저 침대에 들었다.
안트 룸메이트는 중년의 중국 남성이었는데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데도 배려심이 대단했다. 티비를 보고 있다가 안트가 들어가면 부리나케 볼륨을 묵음 수준으로 낮춰줘서 안트가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안트는 일부러 밖에 나와 있고 싶어했고, 나는 내 룸메가 재미있어서 내 방 쪽으로 자꾸 시선이 갔다.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보니 안트가 배에서 신는 폭신한 슬리퍼를 가방에 넣어왔다. 웬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룸메인 아저씨가 안트에게 신으라고 강력히 권하셔서 신었는데 일회용인 것 같아서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왔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일회용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려나 한국에 왔더니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서 그 폭신한 슬리퍼를 내가 아주 잘 신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아주 기뻤다. 처음에 왔을 때보다 그리움이 더 했고, 먹고 싶은 것도 더 많이 생겼다. 아마도 이젠 뭐를 좀 아니까 좋은 게 더 많이 보이는 듯했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9cf2b53893135-6330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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