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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니에게 가는 길 V - 상하이 1
    Our Journey 2026. 4. 21. 10:34

    안트:

    상하이 첫날은 산책으로 시작했다. 호텔에서 출발해 쇼핑 보행자 거리인 난징루를 따라 걸어가 황푸강 서쪽의 강변 산책로인 와이탄까지 갔다. 가는 길에 세 번 도로를 건너야 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넓은 자동차 도로였지만, 나머지 두 곳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만 다니는 길이었다. 그런데 자동차가 없는 교차로는 바닥 포장이 그대로 이어져 있어서 길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전기 스쿠터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신호가 빨간데도 많은 보행자가 길 위에 있었고, 오토바이들은 경적을 울리며 길을 비집고 지나갔다.

     

    와이탄에 도착하면 황푸강 건너편 푸동의 유명한 전망이 펼쳐진다. 방송탑과 수많은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날이 흐릿해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 둘째 날 오후에는 조금 나아졌고, 대비를 약간 조정하니 사진이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그리고 밤에는 훨씬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와이탄 쪽에는 화려한 옛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 은행이나 무역회사 건물이다. 이상하게도 이쪽 풍경은 푸동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상하이는 바다와 가까운 항구 도시라 예전부터 무역 중심지였고, 유럽인들이 많이 진출해 있었다. 그래서 서양식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건물들은 단조로운 현대 건물들 사이에서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잘 보존되어 있어 웨딩 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우리는 와이탄을 아주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가, 중간에 들러 현대적인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쉬었다. 그 다음에는 예원으로 이동했다. 여행 가이드북에는 별표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없어서 그 부분은 아래에서 들국이 따로 설명한다.

     

    이른 오후가 되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보다 빨리 내린 비였다. 그래서 내가 미리 생각해 둔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이름은 ‘파워 스테이션 오브 아트’인데, 옛 발전소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규모가 상당히 큰 발전소였다. 이곳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곳으로, 마침 우리가 방문했을 때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비 덕분에 좋은 선택이 됐다.

     

    매표소 직원이 먼저 나이를 물어봤고, 기쁘게도 시니어는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1층에는 주로 영상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원래도 취향이 아닌 데다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다행히 위층에는 다른 형태의 작품들도 있었다. 그래도 들국은 한 영상 작품에 꽤 오래 머물렀다. 배낭을 멘 한 남자가 중국 곳곳을 걸어 다니며 발로 돌을 계속 차고 가는 내용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 풍경들이 인상적이었다.

     

    저녁에는 아침에 들국이 발견해 둔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게 요리를 팔고 있었는데, 들국은 이런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 식당은 일종의 셀프식으로, 이미 만들어진 요리들이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손님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담고 마지막에 계산하는 방식이다. 보통 여러 가지를 골라 함께 나눠 먹는다. 하지만 게 요리는 들국이 혼자 다 먹었다. 나는 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들국:

    상해에서 맞는 첫 아침 산책은 상쾌했다. 섭씨 19도의 쾌적한 날씨에 자동차 소음 없는 한산한 거리를 천천히 걸어다녔다. 상해 인구 2500만이라던데 다들 어디 가시고 강변 산책로가 텅텅 비었나? 우리는 고풍스런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한 구시가지 강변에서 유명한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신시가지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그다지 흐리지 않았는데도 강건너 고층건물들이 뿌옇게 보였다. 이유를 검색해보았더니 강하구 델타지역으로 안개가 많이 끼기도 하고 스모그 현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동남아 대도시에서처럼 목이 칼칼하거나 매연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봄꽃으로 단장된 거리에는 막 벚꽃이 망울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계절이 한국와 비슷해서 그런가, 음식냄새가 비슷해서 그런가 나는 왠지 친척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 기대 없이 들른 예원정원은 깜짝 놀라게 예뻤다. 마치 미로처럼 구비구비 돌면서 막 피어나는 봄꽃과 연못, 전통건축이 어울리며 아기자기한 새로운 공간을 끝없이 연출해냈다. 규모도 컸다. 16세기에 어떤 부자가 부모님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효자가 아닐 수 없다. 건설하는데 18년이나 걸렸다니 부디 부모님이 완공을 보시고도 오래 사셨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안트는 사진 찍으며 감탄하기도 했지만 깔깔 웃기도 했다. 조각과 전통 장식들이 자유롭고 과감하게 예술과 키치의 경계를 넘나들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뮌헨의 아쌈 교회가 생각났다. 로코코 양식의 극치를 연출하는 아쌈 교회 내부는 보기에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예술품이라고 하기엔 절제성과 고상함이 결여되었다. 아쌈교회도 예원정원처럼 사유건물로 지어졌다. 1733년에 조각가 형제가 개인 예배당으로 살림집 옆에 붙여 지었다.  

     

    외부의 간섭 없이 건축주 개인의 예술적 신념을 자유롭게 실현하다보면 예원정원이나 아쌈교회처럼 유쾌한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이유를 설명하느라 아쌈교회를 끌어왔지만 예술성과 가치로 보아선 예원정원이 훨씬 앞선다는 것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까 상해 시내가 텅텅 비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아, 사람들이 다 여기로 와 있구나. 그럴 만도 하게 아름딥고 재미있는 정원이다. 

     

    예원정원에서는 매표소에 경로우대 가격이 따로 적혀있어서 내가 우리 시니어라고 말해서 조금 싸게 티겟을 샀다. 안트라면 아마 아무 말도 안하고 일반 티켓을 샀을 것이다.  안트는 우리가 중국사회에 공헌한 바도 없는데 경로우대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안트 생각이 바르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경로우대는 의료보험이나 사회보장제도와는 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국적과 사회공헌 여부를 떠나서 그냥 나이 든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배려해주는 풍습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어디서 사셨든 나이 먹느라 수고하셨다는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 노인들이 독일이나 한국의 문화시설에 와서 경로우대를 받아 마땅하고, 우리가 중국에 와서 경로우대를 받아도 괜찮다고 여긴다. 학생 할인도 마찬가지다. 국적에 상관 없이, „어서 와. 공부하느라 힘들지?“하며 건네는 인사가 아닐까? 그러나 자국민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제도, 예를 들면 서울에서 노인들의 공짜 지하철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느낀다. 나는 한국시민이기는 하지만 평생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으므로 공짜 지하철의 혜택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엔날레를 보러 미술관에 갔을 때는 매표소에 시니어 할인 가격이 안 써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 써놓지도 않았는데 굳이 물어보는 것을 안트가 창피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 직원이 친절하게도 우리 나이를 묻고 여권을 검사하더니 공짜로 들여보내줬다. 아유, 반 값이라도 받으시지 공짜는 좀 너무 했다. 경로우대에 당당한 나도 좀 민망스러웠다. 

     

    비엔날레 작품들은 예술성이 높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겠으나 대부분 내 느낌에 조금 파격적이고 난해했다. 하자만 나는 한 시간도 더 걸리는 비디오 하나를 끝까지 다 보았다. 한 서양 청년이 중국의 시골길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였다. 거기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그냥 길이 보이고, 산과 논밭이 보이고, 농사짓는 농부들, 일하다가 쉬는 인부들 등이 가끔 보일 뿐이었다. 이 청년은 걷는 내내 돌을 발로 차면서 걸었기 때문에 늘 달그락 탁탁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청중이 아니라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비디오를 열심히 보았다. 중국의 소도시, 산골, 거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무런 자극이나 포장 없이 심심하고도 순수하게 펼쳐졌다. 내가 일부러 걷지 않아도 가볼 수 있는  여행이라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건, 이 길을 걸어가는 저 청년은 내가 본 이 풍광을 나만큼 보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이 친구는 돌을 발로 차면서 가느라고 아래만 보고 걸었을 것이기에. 

     

    맨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었다. 국경선처럼 생긴 높은 담장에 다달아 계속 전진할 수 없게되자 이 청년은 발로 차며 왔던 돌을 손으로 집어들고 잠시 바라보다가 담장 너머로 힘껏 던져버렸다. 돌 너라도 가라는 식으로. 청년이 이동의 주체가 아니라 돌이 그 주체였다는 걸 말하자는 걸까? 예술가의 의도를 알 바 없었지만 그 심심한 비디오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보았다. 

     

    저녁에는 내가 아침부터 찜해놓은 푸드코트에 가서 매운 고추를 넣고 구워놓은 게를 사먹었다. 그런데 보기만 좋았지 실속이 없었다. 금방 구운 게 아니라 하루종일 진열되었는지 살코기가 바짝 말라있었다. 다리를 앞니로 깍깍 물면서 살코기를 밀어내는 기술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하면 아무 것도 안 나왔다. 이빨로 다리를 하나씩 깨고 젓가락으로 쑤시면 황태채처럼 말라버린 살을 조금 때어낼 수 있었다. 안트도 맛보라고 조금 주고 싶었지만 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 고생하면서 열심히 먹고 나서 수북히 쌓인 껍질을 보니 허무했다. 먹은 게 없어서 밤에 배고플 것 같았다. 

     

    내일은 골라서 맛있는 사먹어야지. 

     

     

     

    <팽귄을 찾아라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그냥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돼요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9ce6fbee2fd65-7435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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