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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II 126-127 - 2일 정토회-문경 2025/10/29-30Our Journey 2025. 11. 10. 23:38
들국:
지난 봄, 독일에서 깨달음의 장이 열렸을 때 나는 바라지로 참여해서 선주 법사님을 뵈었다. 이때 에너지절약형 생활 습관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우리집에선 환경보호 매니아인 남편이 모든 옵션을 계산해서 숫자로 알려주기 때문에, 일상에서 별로 고민 없이 실천한다는 말을 듣고 법사님이 안트를 정토회 공동체에 초대하셨다.
우리는 딸네 가족보다 하루 먼저 부산을 출발해서 문경으로 갔다. 점촌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 잤다. 숙박비가 하루에 6만원인데, 안마의자가 있는 방이라서 5천원 더 줬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 안마의자에 앉았다. 시원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신통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이튿날 아침에 몸이 좀 얼얼한 기분이었다. 남편에게도 권해봤지만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첫날엔 문경새재와 용추계곡을 관광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아쉬웠지만 경치가 아름다웠다. 문경새재에 영화세트장이 있기에 가볍게 들어가 봤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 놓아서 오래 머무르며 구경했다. 옛날엔 광화문 거리가 이렇게 생겼겠구나 상상해보는 묘미가 있었다. 문경새재를 떠나기 전에 안트가 좋아하는 순두부와 버섯이 듬뿍 들어간 전골을 먹었다. 나는 외국에 살면서 묵처럼 매끈한 순두부만 보다가, 이렇게 몽글몽글하게 생긴 순두부는 처음 보았다. 재료가 신선해서 그랬는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용추계곡은 계곡 자체는 깊지 않은데,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 위로 물이 굽이쳐 흐르는 것이 색달랐다. 용추계곡의 돌은 알프스의 돌보다 단단한 화강암이어서 이런 모양의 계곡이 형성되는 것 같다. 간혹가다 제법 빨갛게 물든 단풍이 몇 개씩 보였다. 두 주일쯤 지나면 온 계곡이 울긋불긋 물들 것이다.
이튿날 커피가 맛있는 빵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전날 미리 주문해서 플라스틱 없이 포장해준 빵 박스를 받았다. 마침 차편이 생겨서 편하게 정토회 문경수련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선희 법우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독일에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선희 법우님은 여기 생활이 좋은 듯 얼굴이 아주 맑고 편안해 보였다. 시간이 좀 있어서 수련원 전체를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안트에게 설명해줬다.
수령이 얼마나 되는지 커다란 서암 감나무에 감이 많이 달려서 빨갛게 익었다. 저렇게 높이 달렸으니 사람이 따먹기는 틀렸겠구나 아까워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 법우님이 아주 깨끗하게 잘 익은 감을 하나 내게 내밀었다. 곧 터질 듯 잘 익은 그 홍시를 하루종일 소중하게 손에 들고 다니다가, 그날 저녁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나 혼자 다 먹었다. 껍질채로, 꼭지만 남기고 다 먹었다.
그날 간담회에서 안트는 다음과 같이 자기소개를 하며 발언을 시작하였다. “열일곱 살,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성장의 한계』라는 책을 읽었다. MIT 교수들이 저술한 이 책에는 인류가 지구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년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그나마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그 양의 세 배에서 네 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태로는 결국 파멸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허용된 양보다 덜 쓰고 있고, 상위 10%의 부자들은 훨씬 더 많이 소비하고 있어 전체 평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 상위 10%의 부자들 속에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 들어간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나는 내 몫 이상의 자원을 소비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이후 물리학을 공부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아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해 모든 배움의 기회를 활용하였다.”
정토행자들로부터 많은 질문이 있었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300리터의 더운물이 소비되는 욕조목욕 대신 10리터의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고, 손은 찬 물로 씻고, 겨울에는 난방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실내온도 18도를 유지하고, 다림질할 필요 없도록 빨래하는 요령에 대해서 편안하게 경험을 나눴다. 손빨래와 세탁기 빨래 중 어떤 것이 자원 절약에 도움이 되는지 토론할 때, 세탁기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는 정토행자들의 날카로운 분석이 빛을 발했다. 안트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이는 빨래 방법에 대해선, 화학섬유로 만든 옷을 줄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아직 없다고 했다. 끓는 물 대신 UVC를 이용한 식기살균에 대해서도 대화가 오갔다. 자동차가 꼭 필요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볍고 작은 전기차를 사서 시속 40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린다면 자동차의 순기능이 환경에 대한 악영향을 상쇄할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우리의 여행방식에 대한 날키로운 질문도 있어서 안트가 기뻐했다. 몇시간 비행기를 타지 않기 위해서 몇달 동안 기차, 버스, 배로 이동하면서 먹고 자는 비용을 들이는 여행이 정말 에너지 효율적인지 물었다. 안트는 다른 학자의 계산을 소개하며, 같은 거리를 기차, 버스, 배로 이동할 때 드는 에너지는 비행기의 6분의 1이라고 했다. (이 수치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안트가 확인하고 다시 알려줌) 여행 중 먹고 자는 것이야 집에 있어도 하는 일이니까 계산에 넣지 않는다고 했다.
안트는 우리 일상에서 무엇이가를 데울 때, 특히 물을 데울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비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물은 열용량이 특별히 높은 물질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모터를 이용해 물리적으로 무엇인가를 돌리는 일은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덜 소비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를 돌릴 때, 뜨거운 물로 짧게 돌리는 것보다 덜 뜨거운 물로 오래 돌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이라고 했다. 또한 같은 양을 물을 세게 틀어 짧은 시간에 세척하는 것보다 약하게 틀어 오래오래 세척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계산이 있다고 했다. (이 글을 쓰려고 몇 배나 효과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거 계산하기 쉽다고 나더러 직접 계산해보란다. 쳇!)
계산하는 게 취미인 이 남자, 호주에 사는 우리 딸이 한번 비행기로 독일에 왔다 가는 데 드는 연료에너지는 우리 부부가 4년동안 쓰는 난방에너지와 맞먹는다고 말했을 때 나는 순간 긴장했다. 난 처음 듣는 소린데? 그건 또 언제 계산했지? 설마 우리 법륜스님 비행기 타시는 것까지 계산한 건 아니겠지? 너 여기서 뭐라고 말하기만 해봐라.
나의 정토회 활동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 안트는 평소에 법륜스님이 비행기를 많이 타신다는 소리를 자주 했다. 나는 우리 스님 한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이룩하신 업적은 너 한 사람 비행기 안 타면서 이룩한 업적보다 크다고 맞선다. 우리 스님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인류와 환경에 미치는 효과는, 단 한 사람이 실천하는 효과에 비해 기하급수적이다.
또한 그는 우리 스님이 인도 성지순례 여행을 주최해서 매년 수백 명이 비행기를 타고 인도에 다녀오는 것에도 불만을 품고 있다. 그러나 정토회 성지순례 프로그램으로 인도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인도의 절대빈곤층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빈부격차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정토회 성지순례단이 얼마나 검소하게 다니는지를, 그렇게 절약한 비용으로 인도에서 얼마나 보람찬 일을 하고 있는지도 온 몸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토회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인도인들을 위해 벌이는 교육, 빈곤퇴치, 의료지원 사업을 보며 감사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도 성지순례에서 돌아온 정토행자의 삶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원을 낭비할 때마다 각성할 것이다. 그런 후속 효과를 생각하면, 일년에 몇백명이 아니라 몇천명이 비행기를 타고 인도에 가더라도 결과적으론 이익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안트와 내가 말이 안 통하는 이유는 논리가 아니라 기분에 있다. 안트는 내가 정토회를 너무 좋아하는 게 싫고, 나는 안트가 법륜스님을 비판하는 게 싫을 뿐이다. 정토회는 우리 부부의 영원한 티키타카다.
다행히 안트가 다른 얘기를 안해서 우리는 공개석상의 부부싸움 없이 무사히 간담회를 마쳤다.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많이 감화받은 사람은 아마 나일 것이다. 나는 안트를 새로 알게된 기분이었다. 이 사람은 이런 배경에서 그간 그렇게 괴팍하게 반응했었구나. 내게 주어진 것 이상 갖지 않겠다고 인생의 목표를 정한 열일곱 살 소년의 눈에 이 세상은 얼마나 이기적으로 보였을까?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는 부부인데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간담회에서나 만나야 감정 빼고 내용에 집중하는 대화가 가능한 것 같다. 얘기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짜증 내지 않고, 미리 넘겨짚지 않고.
간담회가 끝나고 우리는 점심공양을 했다. 우리는 손님이라 접시에 밥을 덜었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각자의 발우에 음식을 담아 먹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 자리에서 씻고 닦아 챙겼다. 그것을 안트가 매우 유심히 관찰하더니 좋아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부엌에 가서 정토회 수련생들이 하는 삼단설거지를 했다. 세 개의 통에 물을 받아 차례로 씻고 헹구는 방식인데, 독일에서 옛날부터 설거지하는 방식과 비슷하고, 그보다 오히려 더 깨끗해서 안트는 거부감이 없었다.
정토회 일정을 마치고, 환대에 감사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점촌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아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에 오르니 그제서야 서울에 먼저 가 있을 아이들이 생각났다. 날이 어둡기 전에 우리는 한옥 독채 숙소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만났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90f24b9430a65-1030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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