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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V - 페리로 싱가폴 이동Our Journey 2026. 4. 20. 09:06
들국:
승선하고 자기 전에 쓴 글:
너무나 많은 인원이 몇 번에 걸친 검사와 수속을 마치고 승선하느라 정말 혼잡했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가 여기서 일어난대도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길고 좁은 통로를 인파에 떠밀려 통과해서 우리 자리를 찾았을 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안트: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었다. 모두가 한 번 몰려 있던 지점이 있긴 했지만 10m도 안 되는 구간이었고, 언제든 옆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요가매트 크기의 플라스틱 매트리스가 우리 자리였다. 홑이불 같은 것도 없고 카드랑 랩톱 들은 배낭을 베게 삼아 그냥 입던 옷 입고 그 위에 누웠다.
바퀴벌레가 여기저기 기어다녔다. 내 옆에 누운 얌전한 여학생은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앉거나 누워있는데, 바퀴벌레만 보면 야무지게 때려 잡았다. 나는 죽은 바퀴벌레 보는 게 더 징그러울 것 같아서 그냥 쫓기만 했다. 화장실 가느라 신발을 신기 전에 먼저 탈탈 털었다. 자다가 안트가 신경질을 냈다. 바퀴벌레가 얼굴 위로 기어갔다고 했다. 나는 너무 졸려서 „수건이라도 얼굴에 덮고 잘래?“ 말만 겨우 던지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이불 같은 걸 제공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바퀴벌레 뿐 아니라 벼룩도 있었을 것이다.
밤 2시에 떠난다던 배가 안트 말에 의하면 거의 아침 7시 다 되어 출발했고, 그때까지 많은 승객들이 탔다고 한다. 이 배는 정원 2000명인데 플라스텍 메트리스 깔린 좌석이 다 차고나서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복도와 계단참, 심지어 갑판에도 비닐을 깔고 누워 있다. 그야말로 인원초가다. 태풍아, 오늘은 불지말아다오. 어린아이들도 많이 있고, 매점 앞 공간에는 심지어 작은 플라스틱 미끄럼틀도 하나 놓여있다.
우리가 넉 달 전에 타고온 여객선에는 1등석이 있어서 화장실과 세면대가 딸린 2인용 방에서 자면서 갔다. 그래서 그 때는 편하게 왔는데, 하선할 때 아래층 대형홀에 매트리스가 빡빡이 줄지은 것을 보고, 30시간 을 여기서 보낸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싶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에 타려던 여객선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뜨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는 다른 배표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구한 이 배에는 일등석이 없고 보통석만 있다. 막상 우리가 그 대형홀 메트리스에 자리를 차지하고 보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복도에 돗자리 깔고 누워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이것도 호강이란 걸 알았다.
(안트: 나는 페리 회사 앱이 있어서 배 운항 시간이나 좌석 등급, 가격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어도 지원된다. 티켓 구매도 가능하긴 하지만 외국인은 결제가 안 된다. 이 배는 실제로 한 가지 등급만 있었고 가격은 1인당 약 18유로였다. 티켓은 출발 전에 매진되었다. 발리에서 출발 10일 전에 티켓을 구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이 배를 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이후 기차표도 사두지 않았다. 다른 배인 Kelud호의 1등석은 약 68유로였고 객실은 거의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배는 3월 23일에야 다시 운항할 예정이었다. 그랬다면 우리는 발리에서 더 오래 머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앱에 표시되지 않는 입석 등급도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복도나 계단에 누워 간다. 우리가 탄 배는 구조상 Kelud호와 같은 자매선이었고, 1등석과 2등석 객실도 있었지만 판매되지 않아 비어 있었다.)
또한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카드놀이를 하거나, 다정하게 대화하며 도시락을 사먹거나, 엄마가 먼저 정성스럽게 자기 피부를 다듬고나서 딸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겨주거나, 언니들이 동생들을 살뜰하게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이 나라의 앞날이 밝을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청장년들도 순하고 조용하게 누워서 자기 할 일을 한다. 아이들이 많은데도 대체로 조용하고 남에게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혹여 그러더라도 시비하지 않고 그냥 넘기기에 대체적으로 평화스러웠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정이 순하고 친절한 것 같다. 눈 마주치면 먼저 웃어주고 도와줄 일이 생기면 기꺼이 도와준다. 배에 탑승할 때처럼 혼잡하고 힘든 상황에서 잠시 분노를 터뜨린 사람을 나는 여태까지 딱 한 번 보았다. 바가지 요금도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이 배에서 외국인은 우리가 유일한 것 같다. 우리는 바탐이라는 국경도시에서 싱가폴로 가는 국제선을 타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이 많은 현지인들도 싱가폴에 가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나 잘 때 옆 사람들과 대화한 안트가 그 이유를 알아냈다. 이 배는 바탐을 거쳐서 수마트라섬까지 간다고 한다. 바탐까지 30시간 걸리는데, 수마트라까지 가려면 그 만큼 더 걸린다고 한다. 거기 가는 승객들은 이 배에서 서너 밤은 자나보다. 그것도 좌석표가 없는 사람들은 복도 바닥이나 바깥에서. 우리처럼 바탐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나중에 그들이 우리 매트리스에서 자며 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배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나서 쓴 글:
배에서 보낸 이틀 밤은 정말 불편했다. 홀에는 밤새도록 형광등이 수술실 수준으로 밝게 켜져있고, 테레비전이 쉴 새 없이 시끄럽게 돌아갔다. 내 옆에 있던 얌전한 아가씨는 어디 가고 그 대신 어린 총각이 거꾸로 누워서 잠결에 내 얼굴을 발로 차는 바람에 선잠에서 깨기도 했다. 또 갑자기 엄청 시끄러워져서 깨서 봤더니 새벽 세시인데 사람들이 다 일어나 앉아서 밥 먹으며 놀고 있었다.
(안트: 이상하게도 나는 꽤 잘 잤었다. 새벽 3시의 소란도 전혀 몰랐고, 새벽 5시에 들린 아잔 소리에만 깼다.)
자리표 없이 타서 복도와 계단참에서 누워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만해도 양반이지 싶어서 불평이 쏙 들어갔다. 아기들도 많았는데 우는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아기들은 서양 아기들보다 덜 우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아직 아이들이 동생들을 챙기는 거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배 타기 전에 우리 둘 다 배탈이 났었다. 어쩌면 그 전에 기차에서 사먹은 볶음밥이 문제였을지도 몰라서 배에선 음식을 사먹지 않고 그냥 과자 먹으면서 견뎠다. 다시 탈이 나서 화장실에 자주 가야할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탑승 인원에 비하면 화장실이 그렇게 더러운 건 아니었지만 이런 청결상태가 우리에게 낯설었던 건 사실이다.
믈이 깨끗하지 않다는 말을 들어서 우리는 되도록 씻지 않고 참으며 견뎠는데, 현지인들은 깨끗하게 이 닦고 샤워도 하고 쾌적하게 지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관리 잘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기 남자들은 종교 때문에 술은 안 마시지만 담배를 많이 피웠다. 맑은 공기 쐬려고 갑판에 나가면 담배 피우는 남자들로 꽉 찼다.
한번은 피니 우는 소리가 나서 놀라서 봤더니, 피니 또래의 아이가 엄마 팔에 안겨서 고래고래 울고 있었다. 보아하니 매점 앞에 있는 플라스틱 미끄럼틀에서 놀다가 엄마가 잘 시간이라고 데리고 가니 속이 상한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어디나 다 사랑스럽다.
바닥에서 자며 가는 사람들도 그다지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어르며 도란도란 얘기하며 놀기도 하고, 이런 사정을 그다지 부끄러워하거나 불편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바닥에 누워 있으면 어쩐지 내 눈에는 불쌍해 보여서 차마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우리도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면 이보다 조금 더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서 보낸 이틀은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일부러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바탐 항구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국제항으로 갔다. 싱가포르 가는 배가 언제 떠날지, 자리는 있는지 몰라서 우리는 그랩을 부르지 않고, 제일 먼저 말 걸어오는 기사의 택시를 타고 달라는 대로 주고 국제항에 도착했다. 이코노미석이 다 차서 우리는 비지니스석 표를 샀다. 40여분 가는데 드는 비지니스석 티켓이 우리가 30시간 이상 타고온 국내선 이코노미보다 비쌌다. 그래도 덕분에 생전 처음 비지니스석 라운지라는 곳에 앉아서 차도 마시고 과자도 먹었다. 그리고 배가 도착하니 일반석 승객들보다 먼저 승선해서 매우 쾌적한 1등실에서 너르게 앉아 갈 수 있었다.
하선과 동시에 싱가폴 입국심사대를 거쳤다. 기계에 여권을 얹어놓고 카메라를 보니까 금방 문이 열리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안트는 역대 가장 빠른, 30초 짜리 입국심사라고 좋아했다. (안트: 이 지역 국가들은 대부분 미리 온라인으로 등록하고 여권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그래서 당국이 사전에 확인할 시간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싱가폴에 도착했다. GDP 3000 달러의 인도네시아에서 92000 달러의 싱가폴로 넘어오는 일이 이렇게 수월하구나.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9bca41bd33a92-5025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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