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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니에게 가는 길 V - 부록 4: 제주도와 광주에서 든 생각
    Our Journey 2026. 5. 26. 11:50

    들국:

    제주도 선흘리 볍씨마을은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이 실현되는 곳이다. 볍씨마을 마을회관에선 가끔씩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고, 때때로 같이 밥 먹을 기회가 생겼다. 지구의 날에는 이웃 마을 대안학교 학생들까지 참여해서 내가 여태 보지 못했던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학생들은 직접 작사 작곡한 음악을 신명나게 연주했고, 온 마을 사람들이 거기에 맞춰 춤을 췄다. 나는 이 학생들의 모습에서, 날것’의 기운을 느꼈다. 절이고 볶이는 규범에서 벗어나 싱싱하게 퍼덕이는 생물의 느낌. 

     

    마을회의에서 나왔던 토의 내용을 전해들었다. 가장 연장자인 분이, 언젠가 내가 아프게 되면 곡기를 끊을 생각이니 부디 협조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어머 그러세요, 그런데 단식을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없다고요? 그럼 우리 단식하는 연습부터 하십시다. 그런데 피부가 이렇게 고우시니 아직 시간이 좀 있을 것 같네요. 우리 천천히 연습해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회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가족이었으면 어땠을까? 소통과 해결은 커녕 감정 섞인 반응만 주고 받았을 것이다. 때로는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타인이, 애증의 역사로 뭉친 가족보다 편하다. 

     

    선흘 마을에는 가정집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가 여럿 있었다. 주인이 있거나 없거나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 구경하면 되는 곳인데, 여든 넘은 할머니들의 갤러리다. 농협 창고는 할머니들의 공동작업실로 개조되었다. 어디서 주워왔다는 닭 한마리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작업실은 화가들의 고유한 개성이 각각 드러나도록 꾸며져 있었다. 할머니 화가들은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표현했다. 트라우마와 호기심을 정직하고 꾸밈없이 드러냈다. 마치 ‚날것’과 같이 풋풋하고 당당했다. 왜 이 마을에는 이렇게 ,날것’이 많을까?

     

    평생 학업이나 문화생활을 접하지 못하고 살아온, 평균연령 87세 할머니들의 마음에 열정이란 불꽃을 불러일으킨 ‚그림선생‘ 최소연 작가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 최소연 작가와 집을 함께 쓰는 조한혜정 언니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로 삶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참 멋진 말이다. 나도 그럴까?

     

    제주도에서 나는 또 하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조한혜정 언니의 남편인 전길남 교수님. 초기 인터넷 개발을 이끈 컴퓨터과학자로 한국이 “IT 강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은 핵심 인물이다. 1982년 한국이 자체기술로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나라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네트워크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을 통해 한국 인터넷 인프라가 성장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10여년 전에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고 여전하다시고 인사했더니 아직도 매일 2km씩 수영을 한다고 하셨다. 아시아 인터넷 역사에 대한 책을 마지막으로, 본인이 후세에 남겨야 할 정보의 집필을 이제 다 마쳤다고 홀가분해 하셨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분께 꼭 드리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K-POP이 태어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심에 감사드리고 싶었다. 한류의 선도주자가 되는 K-POP의 성공은 한국의 앞서 갔던 인터넷 발전에 기인한다. K-POP은 인터넷 문화에 특화된 새로운 장르다. 인터넷 기술이 축적되고 인터넷 문화가 남달리 이르게 형성된 국내에서 먼저 왕성하게 소비되다가, 해외에서도 영상·스트리밍·SNS를 소비할 인터넷 환경이 갖춰진 시기를 맞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사흘만 머무르려고 했던 볍씨마을에 무려 열흘이나 머무르며 바쁜 조한혜정 언니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바와 대화를 통해 나는 오랜 고민을 해결했다. 

     

    한국식으로 내일 모레 일흔이 되는 나는 오래 전부터 어떤 어른으로 늙을 것인지 고민해왔다. 이왕이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노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떠나도 빈 자리가 아쉽지 않도록 살고 싶었다. 앞에 나서지 않는 것, 나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 다음 세대들이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것. 이렇게 가닥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말과 글을 아끼게 되었고, 그에 따라 사유가 줄어들었다. 낮은 곳에서 조용히 봉사만 하려니 요리나 운전 같은 일상의 기술과 힘이 딸렸다. 안 그래도 소심한 나는 점점 더 소심해짐을 느꼈다. 

     

    제주도에서 조한혜정 언니를 비롯하여 선배님들의 노년을 보면서 나는 마음을 바꿨다. 평생 내가 해왔던 활동의 연륜을 바쳐 봉사하는 삶도 있다는 것, 그런 것도 세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말을 하고 글을 쓴다고 해서 꼭 꼰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옆에서 보았다. 너그러움과 포용성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적절한 말과 글을 통해 공동체의 방향을 유익하게 잡아주는 어른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 어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인 젊은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보호해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광주에선 어진과 위고를 몇번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서 같이 다녔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이렇게 많이 빼앗으며 즐거워하다니. 현지인들의 설명을 들으며 견문을 넓힌 덕분에 광주는 안트의 최애도시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제 절친이 되어 서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어진과 위고는 우리 자식들 세대다. 

     

    이렇게 나는 한국에서 가지 강열한 경험을 했다. 그를 통해 마음이 열리고 편안해진 나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고, 나는 이런 나의 변화를 환영한다. 여행이 끝나고 독일로 돌아가면 나와 안트의 인생이 여행 전과 같지 않을 것이고, 같지 않기를 바란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a142f2082f8d6-241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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