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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V - 우루무치Our Journey 2026. 5. 29. 20:29
안트:
신장박물관 입구 홀에 있던 거대한 화면은 나갈 때가 되어서야 내 눈에 들어왔다. 아래 구석에 “Windows”라고 적혀 있는 게 보여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번역 앱을 갖다 대봤다. “Windows를 활성화하려면 ‘설정’으로 이동하십시오.” 그러니까 이 장비는 최소한 허술하게 설치된 것이거나, 아니면 아예 윈도우 라이선스 비용도 내지 않은 셈이다. 애초에 왜 이런 걸 윈도우로 돌리려 하는지도 궁금했다.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다. 이런 데는 리눅스를 썼어야 했다.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에는 호텔을 고를 때 좀 더 신경을 썼고, 조식이 포함된 곳으로 잡았다. 호텔은 고층 건물 안에 있었지만 객실은 아마 두 개 층 정도만 쓰는 듯했고, 그래서 규모는 크지 않았고 조식도 아주 다양하진 않았다. 그래도 음식은 괜찮았고 샐러드, 채소, 과일이 많이 나왔다. 반대로 고기는 거의 없었다. 꽤 놀라웠다.
오늘 계획은 신장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박물관 입장권을 위챗으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걸 일주일 전에 알게 됐다. 박물관이 하루 방문객 수를 1만4천 명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기차 안에서 표를 구해보려 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대로 복잡했다. 우선 여러 페이지를 계속 넘어가야 했다. 그런데 전부 중국어였고, 위챗은 알리페이처럼 자동 번역을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이지마다 스크린샷을 찍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텍스트를 하나하나 힘들게 번역해야 했다. 아, 여기 다음 페이지 버튼이 있구나 하는 식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회원가입을 해야 했다. 위챗이 자동으로 내 정보를 넘겼지만, 답변은 독일 전화번호는 안 되고 중국 전화번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이미 알려진 문제였다. 이런 경우 현장에서도 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미 1만4천 명이 다 찼을 경우에도 표를 받을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우리는 디디 택시를 타고 갔다. 박물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지점부터는 그쪽으로 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차가 막혔다. 매표소는 금방 찾았고, 다행히 표도 받을 수 있었다. 하루가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그 다음에는 보안 검색대 앞 긴 줄에 서야 했다.
짐을 엑스레이로 검사하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뒤, 친절한 여성 경비원이 손 스캐너로 몸까지 검사하는 이런 보안 검색은 중국 어디에나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지하철 입구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다지 진지하게 시행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말 형편없는 일자리다. 거기 있는 사람들도 중국처럼 안전한 나라에서 이런 검사가 꽤 무의미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박물관에서는 조금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장은 분쟁 지역이고, 이 박물관은 실제로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될 만한 곳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 역시 검색이 특별히 더 철저하게 이루어진다는 느낌은 없었다.
전시실은 총 13개였지만 모두 운영 중인 것은 아니었다. 각 전시실 입구에는 비교적 긴 설명문이 있었고 영어 번역도 제공됐다. 대개는 그 주제를 시진핑 주석이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함께 적혀 있었다. 그 외의 대부분 설명은 중국어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여기서부터는 번역 앱이 작동을 멈췄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동통신망이 과부하된 것 같았다. 그래서 흥미로워 보이는 설명 몇 개는 사진으로 찍어두고 나중에 호텔에서 번역해보기로 했다.
한 전시실에는 중국 고고학자들이 사막에서 발견한 3천~4천 년 된 자연 미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 박물관의 대표 전시인 듯했고, 사람도 엄청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구경거리처럼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였고 실제로 감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중에 위키피디아를 읽어보니, 가장 오래된 미라들은 인도유럽계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꽤 놀라웠다.
여기 사진들은 그냥 우리 눈에 띄었던 물건 몇 점을 찍은 것이다. 흥미로웠던 건, 7세기와 8세기에 중국 스님들과 심지어 한 번은 한국 스님까지 인도로 불교 경전을 구하러 갔던 경로를 표시한 지도였다. 몇 년씩 걸리는 위험한 여행이었다. 지형 자체가 거의 넘을 수 없는 장애물들로 가득했고, 여행자들은 중국 북서부를 크게 우회해 오늘날의 파키스탄을 거쳐 가야 했다. 산맥을 넘기 가장 쉬운 길이 거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웠던 건 무엇이 있었느냐보다 무엇이 없었느냐였다. 박물관을 나온 뒤에야 위키피디아에서 신장의 역사를 읽어봤다. 그렇다. 중국은 기원전 100년쯤 이 지역을 정복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는 그 부분이 아주 대대적으로 강조되고 있었다. “이곳은 이렇게 오래전부터 우리의 땅이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 지역에는 수많은 지배 민족이 들어오고 나갔고, 대규모 이주도 있었다. 9세기에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위구르인들은 1250년경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그 이후에는 아랍 문자가 이 지역에서 지배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760년 무렵 중국인들이 다시 들어왔지만 이후에도 계속 분쟁 지역이었다.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제국이 일부 지역을 차지했고, 이후 소련 역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국이 이 지역을 끊임없이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1949년 이후부터다. 하지만 이 박물관 안에서는 중국인 외의 다른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고, 중국 문자 외의 다른 문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지역 여러 종교의 공존을 다룬 전시에서도 불교만 등장했다.
저녁에는 역까지 걸어가면서 시간을 재봤다. 다음 날 아침에는 시간이 정말 빠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호텔 조식은 오전 8시부터 시작했다. 아마 이 지역에서도 베이징 시간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태양 시간으로는 그때가 겨우 아침 6시쯤일 테니까.
역 광장에서는 국수집 하나를 발견했다. 국수 요리는 신장의 대표 음식이다. 우리는 “기름 국수”라는 이름의 요리를 골랐다. 여기 국수는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었고 정말 맛있었다. 벽 한쪽에서는 국수의 여정을 그린 벽화를 발견했다. 마지막 장면에는 가족들이 각자 자기 국수 그릇을 엄청난 만족감 속에서 먹고 있었다. 나 역시 꽤 만족스러웠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a12eb2762c9f3-9082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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