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니에게 가는 길 V - 이닝, 알마티Our Journey 2026. 5. 31. 13:28
들국:
우루무치를 떠나 이닝을 향해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닝은 우리가 중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도시였다. 기차로 약 5시간 걸렸는데, 평균 시속은 약 200 km로 안트는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라고 했다.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는 저 뒤쪽엔 하얀 눈에 덮힌 산맥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기차는 산자락을 따라 달리다가 어느 순간에 귀가 먹먹하도록 고도를 높이더니, 터널이 연속으로 이어진 구간으로 들어왔다. 짧은 터널들이이 연속으로 이어졌고, 터널과 터널 사이에선 나무 하나 없는 험준한 산이 코 앞에 나타났다가 금세 다시 사라졌다. 이렇게 산맥을 가로지르자, 갑자기 푸른 벌판이 펼쳐졌다. 수목이 봄꽃을 피우고 있었고 토지도 비옥해 보였다. 꽃 피는 금수강산을 한국에서 경험하고, 이제는 초여름으로 접어든 중국 대륙 마지막에 다시 봄이 오는 대지를 맞이하니 감개무량했다. 이 곳은 고도가 높아서 봄이 늦게 오는 모양이다.
이닝은 여느 중국 도시 같지 않아 보였다. 건물들도 구소련 스타일이 대부분이었고, 사람들 생김새도 어딘가 달랐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달랐다. 투르크 계열 언어 같았다. 역에서 호텔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자기는 카자흐계 중국인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이렇게 지방색이 뚜렷한 지역을 중국식으로 다스리려니 중국정부에서 애로가 많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두고 버스터미널로 나갔다. 안트는 중국에서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가는 교통편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닝에서 알마티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는 하는데, 표를 미리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안트는 플랜 B까지 세심하게 연구해 두었다. 앞으로의 교통편과 숙박을 줄줄이 예약해 놓은 상태라, 하나의 미지수로 인해 모든 것이 어긋날까봐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버스터미널에서 다음날 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버스표를 구했으므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음식 냄새 달라졌다고 안트가 좋아했다. 이닝에 오니,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음식에서 뿐 아니라 길거리 공기에서 사라져버렸다. 중국에 도착한 이래 모든 음식물에서 달착지근하고 혀가 알싸한 고유한 미감이 감지되었고, 심지어는 껍질째로 볶은 해바라기씨에서도 그 향신료 냄새가 나서 난감했었다. 그런데 이닝에 오니 음식과 기본양념이 중앙아시아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위구르 지방의 국수요리는 유명하다. 길가에 국수 전문점이 줄을 이었고, 어디서나 턱턱 손으로 반죽을 치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국수요리를 주문했는데, 쫄깃하고 부드러운 국수 맛과 식감이 정말 좋았다. 여행 초반에 경험했던 식욕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초반엔 새로운 음식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많아서 식욕이 좋다가, 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약간 지쳐서 그런지 새로운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좀 더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처럼 배가 부르고 긴장이 풀려서 일찌감치 침대에 들었다. 그런데 자정쯤 되었을 때 안트가 나를 깨웠다.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꽤 오래 들려서 문을 열고 봤더니 중국 공안이 왔다는 것이다. 한국 번역앱인 파파고가 한국어와 중국어 대화 번역을 제법 잘하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소통은 주로 내 담당이었다. 나는 잠옷으로 입는 짧은 반바지 바람으로 나가봤다.
정복을 입은 공안이 내게 뭐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파파고로도 이해가 잘 안 되었다. 파파고 앱은 이상한 소리를 나열하면서 '사진’이란 단어를 썼다. 나는 이해도 못한 채로 일단 무턱대고 "왜?“냐고 물었다. 공안이 또 뭐라고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파파고는 더 이상한 내용을 나열하면서 "우리는 준법에 속하는 일만 한다“는 식의, 조금 위압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나는 정확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내 뒤에 서 있는 안트에게 물었다. "우리 사진을 찍겠다는 것 같은데 그러라 그럴까?“ 안트는 금방 그러라고 했다. 나는 공안에게 그러라고 했다. 그중 상급자인 듯한 공안이 뭐라뭐라 중얼거리듯 설명을 하더니 우리 옆에 같이 포즈를 잡고, 우리는 셋이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의 바르게 경례를 붙이고 사라졌다.
중국 정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배 타고 연태로 입국해서 관광도 별로 안 하고 신장지방 구석으로 직행하는 우리의 여행일정을 유심히 관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검사할 때도 우리가 숙박과 교통을 우루무치까지만 해놓은 것에 대해 물었었다. 그때 우리가 이닝을 지나서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간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확인하러 왔을까? 아무튼 공안이랑 같이 사진을 찍은 것은, 우리가 그날 그 시간에 이닝 호텔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는 10시반에 이닝을 출발해서 알마티를 향해 떠났다. 중국 국경과 카자흐스탄 국경을 거쳐서 알마티에 도착하는데 거의 하루종일 걸릴 거라고 했다. 중간에 식사시간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정보가 없어서 우리는 버스 안에서 하루종일 먹고 마실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모든 안내가 중국어도 아닌 다른 언어였으므로 우리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 번 정도 버스가 한 시간 이상 정차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왜 이렇게 오래 서있는지 궁금해했다.
드디어 국경에 닿았다. 출국 절차를 위해서 우리는 모든 짐을 가지고 내려서 검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버스티켓과 여권을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10번쯤 보여준 것 같다. 중국 출국절차는 정말 까다로웠다. 여러 명이 몇 번에 걸쳐 질문을 던졌다. 내 독일여권을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세심히 뒤지면서 내가 어느 나라에 갔었는지 검토했다. 그러더니 내게 한국여권도 있느냐고, 있으면 달라고 했다. 뭘 알고 물어보는 것 같아서 순순히 꺼내줬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뒤져보더니 왜 한국 여권에는 아무 나라 도장도 안 찍혔는지 의심스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여권은 한국 입출국시에만 쓴다고 말해줬다. 자국민이니까 도장이 없다는 걸 나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예전에 어느 나라에 다녔는지, 그 점에서 숨기는 것이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풀려나서 또 한참을 철조망이 쳐진 길을 버스로 달려 카자흐스탄 입국소에 닿았다. 입국수속이지만 아까 중국에 비해서 수월하게 통과했다. 우리 여권을 오래 들여다보고 뭔가 조회를 하는 듯했지만 꼬치꼬치 캐묻지만 않은 것도 감사했다. 아무튼 중국을 벗어난 것이 홀가분했다.
카자흐스탄 땅에서 다섯 시간쯤 달려 알마티에 도착했다. 안트는 현금이 적은 걸 너무 불안해했다. 그래서 현금 찾아 걸어서 삼만리를 한 이후에, 예전에 왔을 때 맘에 들었던 음식점에 들어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마치 처음 와보는 듯 모든 게 다 새로운데 안트는 "그때는 여기 공사중이었는데 그새 공사가 다 끝났군. 이쁘게 잘 했네.“ 하면서 그새 변화한 점까지 다 알아봤다. 머리가 이리 복잡하시니 다른 일에 무심할 수밖에 없겠지.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a18072e0bfa00-11988346
'Our Journe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니에게 가는 길 V - 트빌리시 (0) 2026.05.31 피니에게 가는 길 V - 알마티 (0) 2026.05.31 피니에게 가는 길 V - 우루무치 (0) 2026.05.29 피니에게 가는 길 V - 우루무치 행 기차여행 (0) 2026.05.26 피니에게 가는 길 V - 시안 (0)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