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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35일 - 레기스탄 야간공연 2025/7/30Our Journey 2025. 8. 1. 01:25
들국:
레기스탄 앙상블을 마주 보는 위치에 대형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대리석으로 된 너른 계단에 더위가 위력을 잃는 저녁 무렵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관광객 뿐 아니라 사마르칸트 시민들도 가족단위로 오는 것 같았다. 우리도 사마르칸트에 닷새를 머무르는 동안 세 번이나 저녁에 그 계단에 앉아서 노을지는 배경에 함께 물드는 실루엣을 즐겼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참 깔끔한 것 같다. 빗자루나 대걸래 든 사람들이 어딜 가나 자주 보였다. 대리석 계단은 언제 가봐도 방금 청소한 듯 깨끗하게 반들거렸다. 바닥에 앉기에 주저되는 마음이 하나도 안 들었다.
첫날엔 정면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실루엣과 역사의 무게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사람 구경을 했다.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계단에서 노는 모습이 평화스럽과 여유로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청소년들이 새총에 야광 비행물체를 달아 하늘 높이 쏘아올렸다 여유롭게 손으로 받아내는 놀이기구를 파느라고 여기저기서 시범을 보이는 덕에 밤하늘이 더 다채로워졌다. 솜사탕을 파는 어린 아이들도 왔다갔다 하면서 반은 놀고 반은 장사를 했다. 언젠가부터 흥겨운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고 여리여리한 소녀들이 흥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춤을 추다가 엄마의 손길에 제지되기도 했다.
첫날엔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사마르칸트에 도착한 날이라 피곤하기도 했기에. 집에 와서야 저녁 8시반에 그 곳에서 라이트쇼가 열린다는 사실을 안트가 알아냈다. 다음날에 저녁에 또 나갔다. 해가 지고 시간이 되자 디듣자로 배치된 문화재 외벽이 영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춤추는 빛, 꿈꾸는 빛, 웃는 빛, 사색하는 빛으로 음악에 따라 바뀌었다. 음악은 전통음악에 현대식 리듬을 가미했다는 느낌이 드는, 춤 추며 놀기 딱 좋은 장르였다. 문화재의 무게에 비해 가벼운 음악이었다. 내 취향엔 조용한 음악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쾌한 음악에 따라 몸이 절로 흔들리는 소녀들을 보며 나도 그들의 리듬에 마음을 실었다. 그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니까. 흔들리며 변신하던 불빛이 꺼지고 조용해지면서 우리는 자리를 떴다.
레기스탄 관광을 한 날, 가이드에게서 저녁이면 쓰리디 레이저쇼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라이트쇼가 끝나고 잠깐 쉬었다가 9시에 레이져쇼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우리는 다시 한번 광장 계단에 앉게 되었다. 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내가 좋아하는 따끈하게 삶은 옥수수를 하나에 30센트 주고 사먹었다.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으면 하나 더 사는 건데. 너무 맛있어서 안트에게 맛보라고 조금 남겨주고 나는 하나 더 사러 가려고 했는데, 안트가 자기는 맛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나 혼자 다 먹고 하다 더 사러가지 말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솜사탕 파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안트가 말렸다. 안트는 너무 어린 아이들이 장사하는 게 맘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위생이 불안해서 내가 배탈 날까봐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남과 이견이 있을 때, 내가 특별히 확신하지 않는 일은 강하게 고집하지 않는 성격이 있어서 그냥 안트 말을 따랐다.
드디어 화려한 레이져쇼가 시작됐다. 역사를 재현하며 다양한 내용을 담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세계에 어떤 이미지로 알리고 싶어하는지 짐작이 되었다. 나는 레이져쇼도 좋았지만 분위기를 더 즐겼던 것 같다. 가난해도 '저녁이 있는 삶'의 이치를 일찌감치 터득한 사람들의 여유와 평화를 나누는 듯해서 좋았다.
나는 여행할 때 현지인들이 이방인인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도 궁금하지만, 그들이 서로서로 어떻게 대하는지도 유심히 본다.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이렇게 당연한 아직도 사회가 있구나. 만원버스에서 어린 소년 삼형제를 봤다. 피곤해 보였다. 자리가 나자 큰 형이 막내에게 눈짓해서 앉혔다. 다음에 자리가 나자 둘째를 앉히고 자기는 제일 나중에 앉았다. 말 한마디 없이 눈짓 하나로 자연스럽게 소통했다. 늘 그랬다는 듯이. 형아는 배려했고, 동생들은 순종했다. 골목에서 눈이 마주치면 말이 안 통해도 따뜻하게 고개숙여 친밀감을 보여주는 사람들, 골목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레기스탄 가이드가 내게 우즈베키스탄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들이 참 좋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친절해요"라고 말했다. 여기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는 말은 정말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즐긴 레기스탄 야간 공연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trip/685d047694cb79-5258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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