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피니에게 가는 길 67 - 베이징 일요산책 2025/8/31
    Our Journey 2025. 11. 6. 09:16

    안트:

    우리 여행 가이드북에 쓰여있길, 베이징에서는 처음부터 너무 큰 계획을 세우지 말고 천천히 시작하라고 했다. 그래서 자금성 북쪽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쪽에는 옛날식 사합원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후퉁(胡同) 마을이 있다. 이런 분위기는 바로 들국이가 좋아할 만한 곳이다. 게다가 베이징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베이하이 공원도 근처에 있고, 마지막에는 석탄산(景山)에도 올라갔다. 베이징 사람들은 이 언덕을 ‘석탄산’이라고 부르는데, 자금성 주위를 두른 해자를 파낼 때 나온 흙으로 만든 인공 언덕이라고 한다. 우리 여행 가이드북에 의하면, 몽골 시대에 이곳에 실제로 석탄을 쌓아두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에 이 지역에 있는 호텔을 찾았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묵는 곳은 후퉁 안에 있다. 두 블록만 더 가면 시안에서도 봤던 것처럼 종루와 고루가 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산책을 시작해서 하루 종일 천천히 걸으며 둘러봤다.

     

    후퉁은 공산주의 이전 시대에는 각종 상인들이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변기통을 비우고, 또 다른 사람은 고철을 모으거나 수박을 팔았다. 그때는 누가 골목을 지나가는지 알 수 있게 각자 고유한 신호가 있었다고 한다. 큰 소리로 부르거나 종을 치는 식이었다. 종루 안에는 당시 사용되던 여러 신호음을 재현한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톈안먼 광장, 천안문(하늘의 문), 황궁(자금성), 석탄산, 그리고 몇몇 시설들이 모두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있다. 그 북쪽 끝이 바로 종루와 고루다. 이 전체 축선의 길이는 거의 5km나 된다. 걸어가는 길에 여러 번 높은 지점에 올라서 멀리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멀리에는 현대적인 건물들이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공기가 흐릿해서 사진을 좀 보정해야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베이징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베이하이 공원 안에는 호수 위에 작은 산이 있는 섬이 있다. 그곳에는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고, 산 꼭대기에는 하얀 탑이 세워져 있다. 우리는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그 섬으로 가기로 했다. 두 개의 다리로도 호수를 건널 수는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호수 반대편에서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을 찾았다.

     

    처음 찾은 곳은 보트 대여소였다. 패달보트를 빌려주는 곳이라서 그냥 지나쳤다. 다음 후보지는 꽤 큰 배가 있어서 여기가 맞겠거니 하고 표를 샀다. 배에 올라앉았더니 처음엔 방향이 딱 맞았다.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는 정박하지 않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알고 보니 유람선이었다. 하필 안쪽 자리에 앉았던 터라 덥고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시간도 돈도 아까웠다. 좀 허무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제대로 배를 탈 수 있었다. 우리는 사원을 지나 산 위의 탑까지 올라갔고, 반대쪽으로 내려와 석탄산 쪽으로 걸어갔다. 석탄산은 꼭대기에 정자가 있고, 자금성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서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아쉽게도 자금성은 우리가 베이징에 있는 바로 그 며칠 동안 문을 닫는 날이라 방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인파는 충분히 많이 봤으니까. 산 정상의 전망대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잠깐 자리를 얻어 전망도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시간이 꽤 늦어져서 이제 슬슬 저녁을 먹을 때가 됐다. 호텔로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들국은 꼭 호텔 근처 식당에서 베이징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어디선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아마 우리가 너무 일찍 간 모양이다. 덕분에 바로 자리를 잡고 여유 있게 베이징덕을 즐길 수 있었다.

     

    베이징덕은 부드러운 오리고기에 소스와 채소를 얹어 아주 얇은 전병에 싸서 손으로 먹는 요리다. 그래서 먼저 손을 씻었다. 그런데 이내 웨이터가 오더니 아주 얇고 커다란 일회용 비닐장갑을 가져다줬다. 우리는 예의상 그걸 끼고 먹었는데, 장갑을 끼고 먹는 일이 좀 어색했다.

     

     

    들국: 

    안트: 오늘은 계획 세운 게 없어서 큰 일인데?

    들국: 오 좋아, 더 좋아.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슬렁슬렁 돌아다니는 거 나 정말 좋아해. 

     

    오늘은 좀 느긋하려나 했더니 눈 깜빡하는 새 계획을 다 세워가지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한다. 아으. 미래를 걱정하고 계획 세우는 건 안트의 특기이자 취미다. 남의 취미 가지고 시비하는 대신 냉큼 따라나선다. 

     

    오늘은 내가 좋아할 만한 일정으로 가득 찼다. 우리 호텔이 있는 후통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으로도 나는 즐거웠다. 후통(胡同, hùtòng)은 주로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도시의 좁은 전통 골목길을 의미한다. 옛날의 주거 문화와 서민적인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거니와 오늘날까지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간 중국에선 보지 못했던 옛 주거지라 특히 더 반가웠다. 내 건축사 연구테마가 평범한 시민들의 주택에 관한 것이어서 나는 어디 다니면 남의 살림집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거기 사는 사람인양 감정이입이 되어 그런 집에서 사는 일을 꿈꾸기도 한다.

     

    전통가옥은 단층으로 나지막하고 회색 벽돌벽에 회색 기와를 얹어서, 집의 관리 상태에 따라 자칫 고상한 느낌, 자칫 초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박공이 둥그스름한 게 이색적이고 정답다. 중정을 중심으로 방이 배치되어 있어서 아늑한 느낌이다. 건물의 관리상태는 대부분 좋지 않았으나 그런 와중에 꽃을 가꾸고 사는 삶이 아름다워 보였다.

     

    옛날에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비상북을 울리던 종루와 고루 주변은 시민들의 쉬거나 놀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남녀 어른들이 둥글게 보여서 발로 제기를 차올리는 배구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땐 제기를 제법 찼었는데 여기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나는 밖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보면 참 반갑다. 

     

    저녁에도 석탄언덕이 있는 공원에서 수많은 노인들이 여기저기 그룹지어 합창하는 걸 보았다. 악기와 기기를 갖추고 마치 프로처럼 잘하는 큰 그룹도 보았다.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신이 나서 따라했다. 

     

    기분이 좋아서 안트에게 말했다. 

    들국: 나도 중국에 살면 저 사람들이랑 같이 노래할 거야. 

    안트: 저 노래의 내용이 뭔지나 알고 그런 말을 해?

    들국: 몰라. 자기는 알아?

    안트: 나도 모르지. 하지만 모택동을 사모하는 노래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같이 부르고 싶대?

     

    아유, 이 잉간은 남이 기분 좋으면 이렇게 초를 쳐요.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trip/685d047694cb79-5258861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