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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III 154-155 - 자카르타 가는 배 2025/11/26-27Our Journey 2025. 11. 28. 21:06
안트:
배는 16시에 출발하지만 13시까지는 터미널에 도착하라고 했다. 아침에 시간이 좀 남아서 쇼핑몰에 갔다. 혹시나 구내식당 음식이 너무 입맛에 안 맞을까 봐, 배에서 먹을 걸 좀 사두기로 했다.터미널은 호텔에서 그리 멀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랩 택시를 타기로 했다. 처음 배정된 기사는 몇 초 만에 취소하면서, 자기 차로는 그 길을 갈 수 없다고 했다. 아마 20분 정도 막히는 길에 갇히기 싫었던 것 같다.
택시 타기를 잘했다. 길이 엄청 흙먼지 날리고 지저분했다. 터미널에서는 모든 게 차분하게 진행됐다. 보딩패스를 받고, 큰 홀에서 몇 번이나 기다렸다가 다시 이동하고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배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리자 사람들이 물결처럼 움직이며 작은 입구 하나에 몰려들어 침상 객실로 쏟아져 들어갔다.
우리는 여러 층 위로 올라갔다. 일등석 독실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복도나 계단참에서도 사람들이 그냥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일등석과 이등석의 객실은 긴 복도에 쭉 이어져 있다. 대부분의 객실은 비어 있었다. 요즘은 돈 있는 사람들은 다들 비행기를 타는 모양이다. 일·이등석의 장점은 식사가 네 끼 나온다는 거였다. 인터넷 후기엔 거의 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여러 번 쓰여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아주 단순하긴 하지만 먹을 만하고 배도 부르다. 다만 끼니마다 메뉴가 거의 비슷해서 오래 먹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한국 컵라면 두 개를 가져왔다. 인스턴트라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됐는데, 배 안에서는 뜨거운 물을 못 찾았다. 배에서도 인스턴트 라면을 여기저기서 팔고, 상인들은 물론 뜨거운 물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인도네시아 라면이고, 그게 한국인 입맛에 맞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우리가 탄 KM Kelud라는 배는 독일 파펜부르크의 마이어 조선소에서 만든 배였다. 항해는 정말 조용했다. 엔진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배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바다에 파도가 거의 없어서 더 그랬다. 아래쪽 데크에서는 엔진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리긴 한다.
인터넷이 전혀 없다는 말도 완전히 맞지는 않았다. 수평선 너머로 땅이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아주 약하게나마 신호가 잡혔다. 다만 데이터는 거의 흐르지 않았다. 이상한 건, 다른 승객들은 전부 인터넷을 쓰는 듯했다는 거다. 배 안에 열린 와이파이가 하나 있는데, 우리는 접속이 안 됐다.
객실 안에는 스피커가 있어서 가끔씩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아쉽게도 전부 인도네시아어였다. 그리고 새벽 5시에는 무앗진의 기도 소리도 나온다. 볼륨 조절기는 아예 고정돼 있다.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파도가 조금 높아졌고, 끝날 즈음에는 들국이 속이 좀 안 좋았다. 책상에 오래 앉아서 컴퓨터 작업했던 게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배는 22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 시간 더 걸렸다. 문이 열리자 천 명쯤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터미널 밖으로 쏟아져 나와 이동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택시기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지만 우리는 그랩을 타고 싶었다. 인도네시아어를 못해도 되니까. 하지만 이런 아수라장에서는 잘 안 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도 배차가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또 한 명의 택시기사가 왔다. 이번에는 영어를 꽤 잘했다. 얼마냐고 묻자, 그랩 요금의 3배였다. 하지만 밤 11시 30분에 이런 혼잡 속에서 교통비를 아끼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타기로 했다. 돌아보면 그 가격이 정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 두 시간은 거기서 기다렸을 것이고, 차도 출구 바로 근처에 잘 대어 두었다.
호텔에는 늦게 도착한다고 미리 알려 두었다.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거의 모든 호텔이 24시간 리셉션을 운영했듯, 이곳도 그랬다. 우리는 호텔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들국:
나는 이 배를 타게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안트가 오래 고심하고 애써서 성사한 일이라 감사한 마음도 들고, 먹고 자고 노는 동안 먼 길을 이동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익이라 기분이 좋다.
1000명이 탈 수 있는 여객선이라더니 승객이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승선할 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혼잡했지만 그래도 중국에서와 같은 집단 새치기 현상은 없었다. 새치기하는 사람은 한 10%쯤 되려나? 독일에서와 비슷한 수준인 것 같다. 여기서는 새치기를 해도 아무도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는다. 나도 독일에서 새치기 당하면 되게 기분 나쁜데, 여기서는 그러려니 한다.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다. 중국에서만 경험한 집단 새치기 현상은 두고두고 연구감이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옷차림이 남루하고, 무거워보이는 짐을 힘겹게 들고 있었다. 어떤 아기 엄마는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론 엄청나게 큰 짐을 들고 있기도 했다. 모두들 사느라 힘들어 지친 표정이었으나 짜증내거나 공격적인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면 이렇게 밝게 잘 웃어주는 사람들이라니.
갑판에 나가면 담배 피우러 나온 남자들로 빼곡했다. 우리를 보고 말 거는 사람들도 좀 있었다. 한 아저씨는 우리랑 조금 대화하더니 갑자기 스맛폰을 켜고 자기 딸이랑 화상통화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 독일 친구라고 우리를 소개하며 화면을 우리에게 비추고 자기 딸이랑 얘기하라고 했다. 안트는 딸이 예쁘다, 몇살이냐고 맞장구를 쳤다. 아저씨도 안트도 참 재밌는 사람들이다.
많은 국민들이 이슬람을 믿는 국가라서 밤에 두 번이나 객실 스피커를 통해 기도하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바람에 우리도 덩달아 깼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의 좋은 면을 하나 발견했다. 금주.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술 취해 주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지쳐보이긴 했지만 맑은 정신으로 조용조용 얘기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순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잘 웃는다. 우리를 보면 늘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한다. 그리고 자기네들 끼리도 잘 웃고 마치 아이들처럼 툭툭 치고 까르르 웃으면서 논다.
나는 글 쓸 일이 밀려서 배에서 다 쓰려고 했는데 멀미가 났다. 안트가 침대에 누워서 쓰면 멀미가 안 난다고 했다. 나는 이미 속이 좀 뒤집어진 후라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둘 다 침대에 누워서 내 말을 안트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하려던 일을 다 마쳤다. 안트가 문법도 고쳐주며 받아적으니까 우리 작업 속도가 되게 빨랐다. 쳇지피티보다 훨 나았다. 안트는 내가 쳇지피티를 너무 좋아한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쳇지피티가 안트보다 실력이 좋아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부탁할 때마다 냉큼냉큼 들어줘서 좋아하는 거라구.
30시간 여객선의 경험은 참 좋았다. 단지 타고 내릴 때 너무 혼잡한 것은 불편했다. 작은 공간에 갇혀 서 있는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와 숨 쉬기가 곤란한 상황이 오래 갈 때는 이태원 참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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