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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III 156 - 자카르타 2025/11/28Our Journey 2025. 11. 29. 14:51
안트:
우리는 배로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내가 그동안 이 도시에 대해 들은 모든 정보는 내게 여기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바로 다음 날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들국은 하루 정도는 둘러봐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독일 신문을 보니 동남아시아 몇몇 지역에서 큰 홍수가 나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가 지나왔던 남부 태국의 핫야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 이미 홍수 소식과 스마트폰 경고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배에 있는 동안은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아침에 갑판이 모두 젖어 있는 걸 보니 밤에 비가 왔던 모양이었다.
자카르타에 머무는 동안 가능한 한 기차역과 가깝고, 둘러보고 싶은 지역으로 이동하기 쉬운 호텔을 찾아두었다.
며칠 전 싱가포르 아시아 문명박물관에서 보드게임 전시를 봤는데, 마지막 부분에 현대 게임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그중에 ‘자카르타의 교통’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방콕보다 더 심각한 교통체증을 다룬 게임이었다.
조사해보니 자카르타에는 보고타를 모델로 한 BRT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버스 전용 고속수송체계로, 비용이 적게 들어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도 실현 가능한, 성공적인 교통 모델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BRT역과 매우 가까웠다. 기본 개념은 도로 중앙에 버스 전용 차선을 두고, 그 위에 쾌적한 정류장을 설치해 자동차 교통체증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호텔 주변 구간은 시스템이 꽤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북쪽 바닷가 부근, 옛 네덜란드 식민도시의 중심부였다. 그쪽으로 갈수록 도로와 주변 건물의 상태는 점점 엉망이 되어 갔다. 공사 구간이 많았고, 그 구간에서는 전용 차선이 사라져 버스와 일반 차량이 다시 뒤섞였다. 도로 상태도 매우 나빠 버스는 평균 시속 10km 정도밖에 낼 수 없었다.
그래도 목적지에는 도착했고, 오래된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옛 광장에서 두 개의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자카르타가 매년 약 10cm씩 바다에 잠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지하수 남용으로 인한 지반 침하, 지질학적 요인,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까지 겹친 결과다. 바닷가 지역의 도시 상태가 특히 나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BRT 정류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멀리 있는 고층건물이 점점 흐려지는 걸 보고 공기가 얼마나 나쁜지 실감했다. 먼지와 스모그 때문이었다. 자카르타의 대기오염은 심각했고, 나도 코가 잠시 막힐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첫 번째 박물관은 도시의 역사를 다루고 있었다. 선사 시대 도구들로 시작해 초기 힌두 문화, 이후 불교 문화, 그리고 식민지 시기의 역사가 보다 자세히 전시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라비아 상인이 가져온 이슬람의 영향도 있었는데, 이는 자바 지역의 이슬람화로 이어졌다. 힌두교와 불교는 현재 발리와 롬복에만 남아 있다.
식민 역사는 1500년경 포르투갈이 먼저 시작했고, 이후 1600년부터 네덜란드가 이를 이어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가 독일에 점령된 사이 일본이 잠시 이 지역을 차지했다. 그러나 전쟁 직후 네덜란드는 다시 돌아와 거의 전 지역을 유혈 진압하며 재점령했다. 1949년에야 미국의 압력으로 독립을 인정했다.
내가 몇년 전에 이 마지막 시기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크게 충격 받았었다. 네덜란드는 자신들이 식민 지배의 고통을 겪은 직후—기근까지 포함해—그것이 끝나자마자 다시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적 행동에 대해서 들국과 내가 찾은 유일한 설명은 인종주의였다. 그들에게는 동일한 존재의 고통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는 네모난 광장 위에 거대한 기념비를 세웠다. 우리 호텔 근처였지만 시간을 내서 가보지는 못했다. 호텔 조식당에는 그 광장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50~60년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근대적인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많지 않았음에도, 넓은 도로 폭이 자동차 중심의 미래를 꿈꾸게 했던 시대상이 잘 드러났다. 지금은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자동차는 금지되고, 그 자리는 공원으로 변했다.
두 번째 박물관에는 와양(Wayang)이라 불리는 그림자 인형극의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원래는 인도에서 비롯되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크게 발전해 오늘날까지 이어진 문화다. 인형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런 공연에는 종종 가멜란 오케스트라가 음악 파트를 맡는다. 금속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독특한 음악으로, 서양 음계와 달라 매우 낯설게 들린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가멜란 연주가 소개되었을 때, 작곡가 드뷔시는 그 음악에 깊은 충격을 받았고, 이는 이후 인상주의 음악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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