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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III 162 - 발리 2025/12/4Our Journey 2025. 12. 9. 00:32
안트:
전날 힘들게 이동하고 나니 큰 관광을 하러 나갈 의욕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우붓 외곽에 있다. 우붓이 발리의 문화 중심지라고들 한다. 발리는 처음이라 일단 거기로 가보기로 한 것이다. 숙소는 그냥 편하게 쉬면서 앞으로의 여행을 준비할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그렇다고 비싼 건 아니고, 1박에 약 45유로 정도였다. 아침식사는 대형 호텔과는 달랐다. 방이 8개뿐이라 뷔페는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였다. 전날 원하는 메뉴를 미리 주문해야 했다. 우리가 주문한 식사는 괜찮았고 정성껏 준비해줘서 좋았다.
오전에는 동네를 걸어서 둘러봤다. 그런데 그다지 즐겁진 않았다. 이유는 교통 때문이다. 발리도 부유한 곳은 아니라는 걸 이 여행에서 새삼 깨달았는데, 그러면 보도는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부서졌거나 주차로 막혀 있다. 여기서는 보도까지 오토바이들이 점령해 놓는다.
신호등은 거의 없어서 차량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 길을 건너려면 작은 틈을 보고 목숨 걸고 뛰어나간 뒤, 한 팔을 들어 차들한테 조금만 속도를 줄여달라고 신호해야 한다.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차는 천천히 차 사이로 밀고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다른 차량이 양보하면 그 틈으로 들어간다.
도로는 좁고 교통량은 매우 많다. 더 많은 차량이 다니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오토바이 비중은 90%가 넘는다. 대중교통은 없다. 관광객을 위한 가게가 늘어선 좁은 골목조차 보행자 전용 거리가 아니다. 스무 살 때였다면 이런 분위기가 꽤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이곳저곳 금방 다녔을 테니까.
하지만 나이가 좀 있으니 여기가 그리 즐겁지가 않다. 보행자가 차량들과 50cm 거리에서 시속 40km로 스쳐 지나가는 구조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백 미터 이상 걷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두 번 정도 길게 이동할 때는 왕복 택시를 탔는데, 그러고 있어도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좁은 길로 들어가자 우리 차는 진짜로 교통 방해물이었다.
가게 같은 것들은 전부 관광객을 기준으로 되어 있다. 발리는 힌두교 지방이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집들 사이사이에 작은 힌두교 제단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계속 나온다. 집마다 최소한 하나씩 작은 조각상이 있고, 늘 장식이 되어 있으며 공양물이 올려져 있다. 발리 사람들은 여기저기 작은 공양물을 놓아두는 풍습이 있어서, 보도 한가운데 바닥에도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괜히 잘못 밟을까 조심하게 된다.
동네 한 바퀴를 마칠 때쯤 궁전에도 들렀다. 사실 앞마당 정도만 둘러봤다. 입장료를 내면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몰랐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잠깐 풀에서 수영하고, 이어 호주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한 게 다행이었다. 우리가 타려는 몇몇 버스 노선은 이미 꽤 많이 차 있었다. 그래서 오후 내내 멜버른까지의 전체 일정을 계획하고 버스를 예약했다. 아쉽게도 몇 번은 밤새 이동해야 하는데, 그런 건 늘 힘들다.
저녁에는 숙소 근처 식당에 갔다. 메뉴는 국제 관광객 취향에 맞춰져 있었다. 그게 우리한테는 오히려 좋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발리 밸리(Bali Belly)’, 한국어로 하면 배탈 같은 걸 절대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들국:
나는 차를 유난히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자랄 때 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하는 과정을 경험했고, 그런 시기의 자동차들은 도로의 주인으로서 행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행인들은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시스템이였다. 이건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는 어려서 자동차 사고를 몇 번이나 목격했다. 이런 트라우마를 가진 나는 아직도 자동차에 눈이 달려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냥 제 갈 길을 가도록 만들어진 기계이므로, 사람인 나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주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못하는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
안트는 이런 나의 트라우마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갑갑해 한다. 나의 행동을 갑갑해하는 남편과 함께 발리의 무서운 길을 걸어가는 일은 내게 무척 큰 스트레스였다. 점심 먹으러 몇 백 미터 걸어가는 일도 큰 맘을 먹어야 했다. 레스토랑 2층의 커다란 통창 앞에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나는 바깥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런 환경인데도 관광객들이 놀러오는 게 내 기준으론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문득 한 젊은 관광객 커플이 손에 손을 잡고 길을 건너 오는 것이 보였다. 하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웃는 얼굴로 느긋하게 지나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지금의 내 기준으로 보아 여기가 사람 못 살 곳이지, 정말 그런 건 아니겠구나. 나도 일주일만 이 곳에 살면 운전하는 사람들의 습성을 파악해서 거기에 맞춰 길을 건널 것이다. 만약 내가 젊었다면 일주일이 아니라 이틀만에 이들과 동화되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득 중국의 집단새치기가 생각났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틈새만 생기면 그곳을 메꾸는 군중심리를 파악해서 내가 그 일원이 되면, 나도 지낼 만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사회마다 통념이 있어서, 그것을 파악해서 같이 행동하면 손해를 덜 보고, 그걸 못하면 늘 손해 보는 것이다. 늘 손해를 보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를 판단할 일이 아니라.
그러나 내가 불편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런 교통환경에서 교통사고율이 매우 높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희생자는 주로 어린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용케 살아남아도 나처럼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각 나라의 교통시스템은 개발 정도에 따라 같은 패턴으로 발전한다. 그걸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맘이 아파서, 희생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라도 해보고 싶었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9339d75647655-4402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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