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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III 163 - 발리 2025/12/5Our Journey 2025. 12. 9. 00:36
안트:
오전 반을 숙소에서 허비하고 나서, 우리는 유명한 계단식 논을 보러 가지 않기로 했다. (여기 오는 길에 이미 충분히 많이 봤다.) 그리고 원숭이 공원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원숭이들이 가끔 물기도 한다는데, 지금은 원숭이에 물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문화관광의 날을 보내기로 하고, 먼저 박물관에 갔다.
루다나 박물관은 1995년에 한 개인 기부자에 의해 지어졌고, 주로 네덜란드로부터 해방된 이후 인도네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다.
우리밖에 관람객이 없었고, 한 직원이 계속 중요한 것들을 보여주고, 전시된 가멜란 악기들도 우리를 위해 직접 연주해 주었다. 정말 멋졌다.
비디오에서 둥글고 종 같이 생긴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각 악기가 명확한 음높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금속 타악기는 대부분 덜컹거리는 소리가 난다. 평평한 모양의 악기가 명확한 음높이를 가지려면, 형태를 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음높이를 들어보면, 대략 오음계(피아노의 검은 건반만)와 비슷하다. 드뷔시는 세계 박람회에서 이 음악을 듣고 이런 점을 자기 음악에 활용했지만, 여전히 서양 악기를 위해 곡을 썼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악기는 음높이가 약간 불안정하게 들린다. 마치 악기가 조율이 안 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런 불안정 덕분에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될 때 어느 정도 조화로운 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 불안정함도 신중하게 선택된 것이다.
저녁에는 전통 무용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 가멜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역시 개인이 세운 시설에서 열렸는데, 예술 박물관과 관광객을 위한 리조트가 함께 있는 곳이었다. 무대에 가기 위해 우리는 넓은 리조트를 한참 걸어야 했다. 정말 호화로운 곳이었다. 들국이가 말하길, 여기서 숙박하면 나머지 발리 관광은 사실 필요 없겠다고 했다.
우리는 꽤 일찍 도착해서 첫 번째 관객이 되었다. 공연 직전까지 우리만 관람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다른 관객 4명이 더 와서 첫 줄은 어느 정도 채워졌다.
공연된 작품은 오래된 인도 신화를 바탕으로 했고, 원래는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공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광객을 위한 정기 공연이라 45분으로 줄였다. 그래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무용수들과 음악가들도 우리를 보고 기뻐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함께 사진도 찍었다.
들국:
루다나 박물관에 가서 인도네시아의 전통미술도 보았고, 현대미술도 보았다. 현대미술은 전통 모티브를 서양화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그래도 서양화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분위기가 어딘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사랑의 기쁨’이란 제목의 작품은 노란 옷을 입은 무희들을 그렸는데 어딘지 몽환적인 느낌이 났다. ‚명상’도 빨간 옷을 입은 무희들을 통해 표현했다. 라오스, 태국의 박물관에서도 그랬듯이 나는 인도네시아 역시, 나라는 가난해도 예술 문화면에서 선진국들과 동등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통미술은 19세기 말 작품이 소수 있는 것 말고는 별로 보이지 않아서 나는 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외세의 침입에 시달리느라 다 불타 없어져 버렸나? 이 박물관에만 없지 다른 곳에 가면 볼 수 있는 걸까? 설마 19세기 말 이전에 문화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겠지? 누가 그렇다고 우기면 그렇지 않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나? 안 그래도 길에서 보이는 인도네시아 문화재 건물이라곤 전부 식민지 시대의 서양건물만 눈에 띄어서 좀 불안하던 차였다. ‚미개하던 한국이 일본 식민지 시대 덕분에 드디어 발전할 수 있었다’고 우기는 역사 왜곡의 희생자인 나는, 혹시 서양인들이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비슷하게 얘기할까봐 미리부터 아드레날린을 뿜어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친절한 직원이 전통악기 소리를 직접 들려주면서 나의 기우가 해소되었다. 안트가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이렇게 정교한 음을 내는 악기를 만들어 내려면 고도의 음악감각과 기술이 오랜 세월 축적되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 수준 높은 전통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 이 이상의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루다나 박물관은 무척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있었다. 정원은 푸른 논과 벌판으로 이어져 박물관 통창에서 보이는 경치가 장관이었다. 박물관 덕분에 어제 발리의 교통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렸다.
저녁엔 전통무용 공연을 보러 갔다. 가운데선 무희들이 춤을 추고, 양쪽으로 오케스트라가 앉아서 공연하고, 오른쪽 오케스트라 앞에 남녀 소리꾼 각각 두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무희들이 할 말을 노래로 대신 해줬다. 어딘지 우리나라 창극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가멜란 음악은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조화롭고, 단순한 것 같으면서 오묘해서 자꾸 반복해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손과 발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듯한 춤사위에 나는 흠뻑 빠져버렸다.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집중해서 보았다. 내가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오전에 루다나 박물관에서 인도의 라마야나 전설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봤는데, 안트가 오늘 구경할 공연이 바로 라마야나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그림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고 쳇지피티한테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것이 공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공연이 열린 리조트는 마치 한 마을 처럼 거대했고 경치가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 안에는 카페, 음식점은 물론이고 현대미술 박물관도 있었고 숲, 시내, 논 같은 경치도 있었다. 여기 머무는 게 얼마나 비싼지는 모르지만, 밖에 교통도 복잡한데 이런 데 콕 박혀서 문화체험 하면서 쉬고 가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인도네시아는 보지 못하고 가는 여행이 될 것이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9339d8748c703-33948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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