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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니에게 가는 길 V - 부쿠레슈티
    Our Journey 2026. 6. 18. 05:26

    들국:

    루마니아로 가는 밤버스를 타기 위해 이스탄불의 거대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작년에 여기 도착했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점을 찾아서 똑같은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비슷비슷한 음식점이 줄지어 있는 가운데, 우리는 그 음식점을 찾을 수 없었다. 사진을 꺼내서 비교해 보아도 그새 수리를 했는지 알아볼 수가 없어서 누가 들어오시라고 이끄는 곳으로 그냥 들어갔다. 작년에 먹었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 가지음식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너무 자주 먹었는지 별로 당기지 않았다. 우리는 렌틸스푸, 샐러드, 동글납작하게 지진 동그랑땡을 맛있게 먹었다. 

     

    밤새 부쿠레슈티로 달리는 버스 좌석은 매우 좁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탄 장거리 버스는 다 비좁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울리와 마리온이 적극 권장한 압박스타킹을 부지런히 챙겨 신었다. 고마워!) 그레이하운드, 플렉스버스 모두. 유일하게 편안한 버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땅덩이가 작아 오래 타봤자 고작 너댓시간 타고 가면 끝인 한국에만 있었다. 자리가 넓고, 쿠션이 푹신하고, 발판이 올라가면서 편안히 젖혀지는 버스를 나는 종종 그리워했다.  

     

    밤버스는 늘 피곤하다. 화장실 가는 정차를 놓칠까봐 늘 선잠을 잔다. 어쩌다 잠이 들어도 의자가 불편해서 목이며 어깨가 결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경을 지나는 여정이라 두 번 이상 내려서 출입국 심사를 거쳐야 했다. 신기하게도 터키를 나오는 국경에서는 엑스레이로 짐검사를 했는데, 좀 있다가 불가리아, 즉 EU로 들어가는 국경에서는 간단한 여권검사만 하고, 짐검사는 생략했다. 그 대신 버스 짐칸을 플래쉬로 비춰보았다. 안트가 EU 국경에선 사람이 몰래 숨어들어가는 것만 막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고 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국경에선 경찰이 버스에 올라와서 간단히 여권검사만 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도로 양쪽으론 넓고 비옥한 농지가 펼쳐졌다. 먹을 것은 걱정이 없어 보이도록 밭도 푸르르고 물도 풍족해 보였다. 가끔씩 보이는 농가들도 가난해보이지는 않았다. 루마니아 들어오니 가끔씩 벌판에 대규모로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터키에서는 그리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대신 터키에선 주택 지붕 위에 태양열 온수기를 달아 놓은 것이 흔히 보였었다. 

     

    드디어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루마니아에선 카드결재가 보편화되어 있어서 애플페이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안트의 무서운 기억력에 의지해서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다녔다. 체크인 시간 한참 전에 호텔에 짐만 맡기러 갔는데 방이 준비되었다고 들어가라고 했다. 다녀보니 이런 서비스는 좀 드물었던 것 같다. 

     

    부쿠레슈티 시내를 보니 여기서부턴 확연히 유럽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시계획이며 크고 작은 건물들의 양식 여느 서유럽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에 도로변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작은 고건물들이 거의 폐가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 가슴이 아팠다. 안트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도시 유산을 구하지 못하는구나 하고 탄식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공산주의에서나 자본주의에서나 그나마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이 건물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여,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돈의 여유가 생기는 즉시 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보수하는 대신 헐어버리고 현대식 건물을 짓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보았다. 

     

    집에 돌아갈 날이 일주일 후로 다가왔다. 독일 집에 사는 생활이 그립기도 하고 따분하기도 기분이 교차했다. 요듬 안트와 사소한 일로 다툼이 잦은 이유가 거기 있을까?

     

     

    안트:

    우리는 부쿠레슈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정오쯤 도착했고 다음 이동은 오후였기 때문에 그 사이에 시간을 보낼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이런 때면 박물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부쿠레슈티에서는 많은 박물관, 아마 국립 박물관은 거의 모두 월요일과 화요일에 문을 닫았고, 하필 우리가 머문 날도 월요일과 화요일이었다.

     

    반대로 다른 박물관들에는 이런 상황이 방문객을 맞이할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개인 소장가들이 시에 기증한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예술 컬렉션 박물관(Muzeul Colecțiilor de Artă)"을 찾았다. 처음에는 그곳이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유작이나 유산을 전시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작품들이 품위 있게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작품이 많았고, 건물은 오래되고 우아했으며, 모든 그림이 금빛 액자에 담겨 있었다.

     

    화요일 오후에는 오랜만에 현대미술관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에 문제가 생겼다. 그 미술관은 월요일에는 문을 열지만 화요일에는 휴관이었다. 낭패였다. 그래서 대신 20세기를 중심으로 한 각종 기술 기기들을 모아 놓은 개인 소장 박물관인 "루마니아 기록 박물관(Museum of Romanian Records)"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카메라, 영화 촬영기, 타자기, 악기, 현미경 등 온갖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고, 다른 층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리미 컬렉션도 있었다. 기네스 기록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전시품 하나하나의 종류와 수가 놀라울 정도로 많았고, 모두 반짝반짝 깨끗한 유리 진열장 안에 정성스럽게 배열되어 있었다. 마침 한 여성이 진열장 내부를 닦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아마도 그곳에서는 청소만 해도 끝이 없는 일일 것 같았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났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에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비를 무릅쓰고 이동해야 했다. 빈으로 가는 기차를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차가 출발한 뒤에도 다시 한번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얼마나 심했는지 객실 창문의 손잡이를 타고 물방울이 실내로 떨어질 정도였다. 스마트폰에는 홍수 경보를 알리는 공식 재난 문자까지 도착했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a268531ae7269-6127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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