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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니에게 가는 길 V - 비엔나
    Our Journey 2026. 6. 18. 05:31

    안트:

    부쿠레슈티에서 빈까지 가는 침대칸이 있는 직행 야간열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그곳에서 3일 반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아직 빈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곳에는 우리가 방문하려는 친구들도 있었다.

     

    부쿠레슈티에서의 열차 여행은 특별한 일 없이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빈에서 묵은 숙소는 단기 임대용 아파트였는데, 아마도 그런 용도로 지어진 건물 안에 있었고 같은 형태의 아파트가 매우 많이 들어서 있었다. 체크인과 체크아웃은 모두 자동으로 이루어졌고, 직원과는 어떤 접촉도 하지 않았다. 숙소는 중앙역에서 100m 조금 넘는 거리에 있었다. 대중교통 연결도 매우 편리했다. 주변에는 여러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아침 식사는 직접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적응해야 하는 외식물가를 생각하면 가끔 직접 요리할 수 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우리는 7일권 대중교통 이용권을 구입했는데, 그것이 가장 저렴한 선택이었다.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갈 때 표를 보여줄 필요도 없고 보안 검색도 없다는 사실에 다시 적응해야 했다. 참고로 보안 검색은 부쿠레슈티에서도 없었다.

     

    우리는 오전에 도착했지만 숙소 체크인은 오후에야 가능했기 때문에 짐을 맡길 곳을 찾아야 했다. 호텔은 보통 짐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철저하게 시스템화된 단기 임대업체는 근처의 전문 보관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안내했다. 우선 역의 물품보관함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보관함은 매우 많았고 빈 칸도 있었다. 열쇠를 사용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터치스크린으로 예약하고 스마트폰으로 비접촉 결제를 한다. 이용 과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하게되어 있는데, 그러면 보관함 번호와 잠금 해제용 QR 코드가 포함된 안내 메일이 발송된다.

     

    첫날 반나절 동안은 시내를 조금 걸어 다녔다. 날씨도 좋지 않았거니와 나중에 할 생각으로 사진은 찍지 않았다. 하지만 바쁘게 지내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 방문이 빈과의 마지막 만남은 아닐 것이다. 뮌헨에서는 기차를 타고 쉽고 저렴하게 올 수 있고, 빈은 정말 아름답고 볼거리도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둘째 날에는 쇤브룬 궁전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방문했다. 그래서 먼저 궁전 공원에 가 보았다. 다만 궁전 내부를 둘러볼 시간은 없었다.

     

    셋째 날은 박물관의 날이었다. 빈은 ‘빈 모더니즘(Wiener Moderne)’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해 항상 언급되는 예술가가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다. 그의 작품은 벨베데레 미술관에 비교적 큰 규모로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벨베데레는 아담과 이브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을 아우르는 거대한 미술관이다. 그곳은 다음번 빈 방문 때 가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뮤지엄 콰르티어로 가서 먼저 레오폴트 미술관을 찾았다. 이곳에도 빈 모더니즘 관련 컬렉션이 있다. 이후에 다른 박물관들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레오폴트 미술관만 해도 규모가 상당히 커서 관람을 마치고 나니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 후에는 링슈트라세를 따라 조금 걸었다. 빈은 19세기 중반까지 도시 성벽을 갖추고 있었고, 성벽 바깥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이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시기에서 남은 흔적이었다. 성벽이 철거되자 도시 한가운데 넓은 빈 공간이 생겼고, 그곳에는 매우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우리는 다시 시내를 걸으며 슈테판 대성당도 지나갔다. 그곳에서 그날 저녁 성당에서 열리는 비발디의 「사계」 연주회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표가 남아 있는지 물어보니 아직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에는 아름다운 연주회까지 즐길 수 있었다.

     

    내가 특히 보고 싶었던 것은 미술사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던 카날레토와 그의 조카 벨로토의 특별전이었다. 두 사람은 18세기에 도시 풍경을 매우 세밀하게 그린 화가들로, 카메라 옵스큐라 등을 활용한 작업 방식 덕분에 정확한 원근법을 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고향인 베네치아의 풍경을 그렸는데, 당시 부유한 영국인들은 일생에 한 번쯤 베네치아를 방문해야 한다고 여겼고 이런 그림들을 기념품처럼 사 갔다. 그런데 여러 전쟁 때문에 그들이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자 카날레토는 아예 런던으로 이주했고, 벨로토는 드레스덴과 빈에서 활동했다.

     

    마지막 날 오전에는 미술사 박물관을 찾았다. 특별전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상설 전시도 둘러보았다. 이곳은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를 매우 닮은 느낌을 주었다. 소장품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그중에는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의 유명한 작품 「바벨탑」도 전시되어 있었다.

     

     

    들국:

    웅장하고 아름다운 도시 비엔나에 나는 첫 눈에 압도당했다. 2차대전 때 융단폭격을 받은 뮌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 부러웠다. 생각해보니 보존만 잘 된 것이 아니라, 황국의 수도로서 애초부터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도시다. 나는 박물관에 가서도 그림을 보기 전에 장엄한 내부구조에 눈길이 먼저 갔다. 유겐트스틸 양식에 관심이 있는 나는 처음으로 비엔나 분리파를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비엔나에 첫 발을 디딘 순간 나는 나흘의 관광일자가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마음 편하게 보고 싶은 것만 슬렁슬렁 보기로 했다. 그 대신 다음에 길게 오기로 했다. 

     

    우리는 비엔나에서 정토회를 통해 알게된 젊은 친구를 만났다. 한국인 부인과 오스트리아인 남편이 세살배기 아들과 함깨 오손도손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경치 좋은 와이너리 지역에 위치한 이 가족의 주말농장에 놀러갔다. 나는 예전부터 이 주말농장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비엔나 토박이 집안 출신의 오스트리아 청년과 결혼한 한국 새댁이, 시댁 어른 소유의 주말농장에 애착을 가지고 공들여 가꾸는 이유를 들었을 때 내가 울컥했기 때문이다. 그 주말농장에는 견고하게 지은 농막이 있는데, 한국에 전쟁이 나면 오빠네 가족이 거기서 기거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로 아직도 휴전상태로, 당장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험난한 시기를 끊임없이 겪으며 발전해왔다. 농막에 대한 젊은 새댁의 애착은,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가지고 있는, 걱정되는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정확하게 표현되는 대목이다. 

     

    친구는 시댁 어른들이 이 농막 소유권을 자신들에게 이전해주셨다고 기뻐했다. 어른들 입장에선, 손 많이 가는 주말농장을 젊은 자손이 깔끔하게 관리하며 애용하는 것이 흡족하셨을 것이다. 시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농막은 한 가족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편리하게 갖춰져 있었다. 아기 키우면서 농사를 어떻게 짓나 궁금했는데, 손재주 좋은 남편이 화단과 밭에 자동 관수장치를 설치해줘서 일주일에 한번씩만 와도 된다고 했다. 여기는 달팽이도 없는지 채소들이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이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서 아스파라거스 리조또를 해줬다. 주말정원에서 솎아온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이집 남편이 요리한 리조또는 입으로 술술 넘어가는 맛이었는데, 만들기가 아주 쉽다고 했다. 남편 어머니가 이태리분이시라 나는 처음으로 가정식 이태리 리조또를 먹은 셈인데, 나도 집에 가서 해보고 싶어서 요리 방법을 자세히 물어봤다. - 리조또 쌀을 녹말이 너무 씻겨나가지 않도록 살짝만 씻는다. 쌀을 야채와 함께 올리브유, 버터에 볶다가 야채스프를 자작하게 부어 끓인다. 15분 정도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라고 하는데 건강도 맛도 일품이다.-

     

    손주가 그리운 우리 부부는 이 집 아이와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른들이 부엌에서 일하는 걸 도와줄 생각도 안하고 아이하고만 놀았다. 아이는 밝고 명랑하며 붙임성이 좋았다. 그새 정이 들어서, 서로 폐가 되더라도 자주 교류하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부부에게 뮌헨 우리집으로 자주 오라고 꼬셨다. 집 근처에 독일 과학박물과 이자르 강변 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이 많이 있다고 자랑했다. 우리도 이번에 이틀이나 신세를 졌으니 이들도 마음 놓고 우리집에 왔으면 좋겠다.  

     

    아이 유치원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오스트리아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제법 듣게 되었다. 주거와 교육 면에서 오스트리아는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독일보다 더 잘 작동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가는 독일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전철에서 노약자에게 양보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 독일도 그런가? 그런데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친절했다. 길이나 마트에서 화내는 사람이 독일보다 더 적은 것 같다. 아니, 나흘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1년 걸린 긴 여행의 마침표를 비엔나에서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잘 아는 독일을 기준으로 비교하며 우리는 여러 나라를 알아갔다. 독일로 들어가기 직전에, 문화와 사는 수준이 비슷하고 독어를 사용하는 외국을 마지막으로 경험하며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몸으로 느껴본 것은 무척 의미 있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나는 집에 돌아가면 여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았다. 첫째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평생 나는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것을 별로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기엔 너무 바빴고, 그래서 나는 절친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몇년, 몇십년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금세 절친이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알게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독일 또는 유럽에도 나의 절친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소소하게 교류하며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그립게 떠올랐다. 이제는 소소한 일상과 거기서 가볍게 스쳐가는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가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외국도시에서, 처음 보는 세살배기 파비오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살고 싶다는 바램을 느낀 것이 방점을 찍었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a2e45a02d9fe1-41327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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