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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니에게 가는 길 45- 알마티 밤거리 2025/8/9
    Our Journey 2025. 8. 10. 21:15

    들국:

    숙소 근처에 커다란 쇼핑센터가 있어서 어제 거기부터 가봤더니 럭셔리한 수입품목이 주를 이뤄서 우리는 실망했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보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좋은 점은 안경 전문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께 유리창에 부딪혀서 휘어진 안경테를 고치는 일이 시급했다.

     

    안트 조언으로 구글번역기에 "안경테가 휘어져서 수리하려고 한다. 재질은 티타늄이다."라고 써가지고 들어갔다. 중년의 여직원이 테가 없는 내 안경을 받아 보더니 젊은 직원을 불러서 통역을 시켰다. 티타늄은 강해서 수리하다가 안경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그래도 괜찮다고 하니까 안경을 가지고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젊은 직원이 음료수를 마시겠냐고 친절하게 물었다. 잠시 후에 중년의 직원이 기쁜 표정으로 내게 완벽하게 수리한 안경을 건네줬다.

     

    천금이라도 낼 마음으로 지갑을 꺼냈더니, 카자흐스탄이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그럴 수는 없다고 하니까 나 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주먹 쥔 두 손등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주먹인사를 하는 줄 알고 나도 주먹을 쥐어 가볍게 부딪쳤다. 그게 아니라고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두 주먹을 펴보였다. 손바닥에 작은 초콜릿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우리는 초콜릿 선물까지 받고 감격스런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기꺼이 포즈까지 취해주셨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번개같이 떠올랐다. 두 주먹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뜻이었다. 내가 지목하는 주먹을 펴서 거기 있는 초콜렛을 주려는 의도였는데, 들국이가 어벙하게 자꾸만 주먹을 둘 다 치는 바람에 초콜렛을 네 개나 빼앗긴 것이다. 에구, 민망해라. 그러나 이 스토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알마티를 떠나기 전에 케익이라도 사들고 다시 한번 들러야겠다. 안경이 너무 편안하게 잘 맞아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하루를 기쁘게 시작해서 그런지 오늘은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안트가 구글 평점을 보고 고심해서 고른 음식점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안트는 닭고기와 야채 볶아서 얹은 수타면 요리를, 나는 잔치국수처럼 생긴 국수를 시켰다. 나오는 걸 보니까 국물 색깔이 까만 것이 잔치국수는 아닌데 시원하니 맛있었다.  우리는 보통 두 가지 다른 요리를 시키면 꼭 반씩 나눠먹는다. 앞접시를 달래서 처음부터 나눠서 먹기도 하고, 일단 하나씩 먹다가 반쯤 먹고 나서 접시를 바꾸기도 한다. 오늘은 먹다 보니 맛있어서 안트에게 "안 바꿀 거야, 나 혼자 이거 다 먹을 거야" 그랬더니 안트는 매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필경 자기 국수는 엄청 맛있고, 내 국수는 맛없어 보였던 게야. 

     

    숙소에 와서 여행 계획도 세우고 예약을 하느라고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처음으로 숙소에서 요리를 해먹기로 했다. 나는 세탁기를 돌리고 안트가 요리를 하는데, 부엌에서 지글지글 볶는 소리와 함께 쿰쿰한 냄새가 났다. 안트와 나는 서로 맡을 수 있는 냄새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이럴 때 조심한다. 남이 열심히 요리하고 있는데 냄새가 어떠느니 함부로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안트도 별 말이 없어서 또 나만 맡는 냄새인가 하고 있다가, 혹시나 해서 숙소에 있던 해바라기 오일의 라벨을 봤더니 이해할 수 없는 글자 사이에 2013이란 숫자가 있었다. 이게 설마 유통기한은 아니겠지? 안트에게 보여줬더니 "그럴 리는 없지만 냄새가 이상하긴 해." 하면서 먹지 말자고 했다. 다 버리고 남은 것은 전자렌지에 돌려서 살짝 익힌 작은 가지 하나. 그걸 크랙커에 얹어서 저녁삼아 먹었다. (사진도 찍었는데 안트가 창피하다고 그 사진은 팽귄에 올리지 말라고 하심.)

     

    저녁 산책을 나갔다. 안트가 지하철을 꼭 타고 싶어했다. 지하철 역까지 가는 버스편은 아직 알아보지 못했다고, 얼마 안 되는데 슬슬 걷자고 해서 또 속았다. 지하철역까지 엄청 많이 걸어가서 지하철은 꼴랑 한 정거장만 탔다. 그래도 안트는 지하철을 타봤다고 아주 좋아했다. 소련 시절에 짓기 시작해서 그런지 엄청나게 깊었다. 이 지하철은 공사 시작하고 금방 소련이 해체되는 바람에 오래 공사를 쉬다가 근래에 완공했다.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한 역의 시설과 차량이 현대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차량 내부에 '현대' 고로가 있는 것을 안트가 발견하고 알려줬다. 

     

    밤에 걷는 알마티 시내는 상상을 초월하게 활기찼다. 청년, 장년, 노년과 어린이들이 골고루 나와서 엄청나게 넓은 보행자 전용도로를 즐겁게 메우고 있었다. 보통 유럽 도시의 중심가를 이루는 보행자 전용도로는 양쪽으로 상점이 즐비한데, 알마티에는 상점 대신 카페와 레스토랑 등 즐기는 업소들이 이어졌다. 아마도 포스트 온라인쇼핑 시대에 형성된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안트가 말했다. 물건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카페, 레스토랑으로 보행자를 부르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는 듯하다. 특히 이 나라에는 젊은 층이 월등히 많은 건강한 인구피라미드를 보이고 있기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트렌디하고 활기차 보였다. 

     

    여태 지나온 나라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거리의 악사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거리 곳곳에서 개성 있는 음악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대도시 밤거리 문화가 흥겹기는 터키, 우즈베키스탄도 좋았지만, 거리의 악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매우 높은 비율의 이슬람교가 음악이나 미술을 장려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이슬람의 비율은 75%로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여기선 길거리에서 가무를 즐긴다. 머리수건을 쓴 여성들도 매우 드물다. (안트: 종교를 억압했던 소련 공산당의 영향이 아닐까? 들국: 그렇다면 주 종교가 같은 우즈베키스탄은 왜 다를까? 결론: 모름)

     

    모처럼 흥겨운 분위기에 홀려서 나는 맨처음 만난 거리의 악사의 모자에 그리 적지 않은 금액을 넣었다. 다음에 만난 악사는 그렇게 맘에 들진 않았지만 차별하지 않으려고 똑같은 금액을 넣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음에 만난 음악가는 전통복장을 입고 전통악기로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세 명의 아이들이었다. 어찌나 기특하고 귀여운지 세 배로 주고 싶었는데 안트가 기겁을 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을 너무 싸게 먹어서 굳은 돈이라고 내가 우기면서 두 배로 흥정했다.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춤판으로 이끈 소녀를 마지막으로, 내가 정한 금액의 지폐가 동이 났다. 돈도 떨어지고 다리도 아파서 숙소로 돌아왔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trip/685d047694cb79-5258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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