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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50- 중국행 밤기차 2025/8/14Our Journey 2025. 8. 13. 12:45
들국:
드디어 중국을 향해! 중국은 안트가 가장 불안해하는 미지의 나라다. 우리가 여태까지 요긴하게 썼던 효자앱들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안트는 위쳇과 알리페이, 트립닷콤, 국영철도앱을 미리 깔고 열심히 공부했다.
처음엔 17시간 걸리는 신형고속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알마티에서 우루무치로, 중국 깊숙히 한꺼번에 데려다 준다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터키에서 조지아로 가는 17시간짜리 고속버스에서 고생한 것이 생각났다. 출발시간이 지연되어 시간이 급해지니까 승객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자꾸 건너뛰고 달리는 바람에 나는 오랜 시간 화장실을 참느라고 땀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급할 게 있나 하는 심정으로 좀 멀리 돌아서 기차로 가는 노선을 택했다. 24시간 걸려 국경도시 도스틱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탔다. 거기서 버스로 국경을 넘어가는 노선이었다. 기차에 식당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먹을 것을 잔뜻 사서 4인용 침대칸에 올랐다. 이게 이 기차에서 제일 비싼 표였다.
엄청나게 긴 이 기차는 소련제였다. 나는 이렇게 튼튼한 철제 기계를 좋아한다. 내가 학창시절에 중고로 산 재봉틀이 스웨덴 제품인데 , 모든 것이 철제여서 박음질을 하면 트랙터 소리가 났다. 튼튼하게 만들어서 망가질 부품이 하나도 없고, 망가져도 수리가 가능했다. 앞뒤 박음질과 지그재그 밖에 되는 게 없었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기술도 그것 뿐이어서 나로서는 아쉬운 게 없었다. 그래서 내 재봉틀처럼 트랙터 소리가 나는, 모든 것이 철제로 된, 튼실한 기차를 타서 기분이 편안했다.
우리 칸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현지인 남녀 두 사람이 타서 이런저런 도움도 받고, 대화의 꽃을 피웠다. 멀리 악토가이 구리 채석장으로 일하러 하는, 짐작컨데 고위직 직원들인데 무척 해박했다. 이렇게 기차 타고 가서 3주일간 2교대로 휴일 없이 일하고, 3주일을 다시 집에 가서 꼬박 쉬는 형태의 직장이었다. 아마도 오일펠드나 탄광처럼 오지에서 지하자원을 채굴하는 작업에 최적화된 근무형태일 것이다. 우리는 과자를 나눠먹으며 그간 이 나라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들을 다 물어봤다.
창 밖에는 한참동안 비옥한 초록색 풍경이 펼쳐지더니 어느새 지평선이 보이는 황토빛 초원으로 이어졌다. 세상에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을 것 같은데 가끔씩 말이나 소떼가 보였다. 이게 야생이냐고 물었더니, 둘 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제 카자흐스탄에 야생마나 야생소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사람이 관리하는 가축일 거라고 했다.
아직 이른 오후인데 두 사람은 자리를 깔고 누울 채비를 했다. 혹시 이 분들은 가자마자 밤근무를 해야 되나 싶어서 안트랑 나도 잘 준비를 했다. 우리 자리는 윗층인데, 엄청 높고 사다리가 따로 없이 기발하게 생긴 발디딤틀을 밟고 올라가는 구조였다. 다리가 짧은 나, 어깨가 아픈 내가 오르내릴 수 있을까 걱정스런 눈으로 봤더니, 남자분이 자리를 바꿔주겠다고 했다. 가늠해봤더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양했다. 그는 우리가 시트를 까는 걸 자상하게 도와준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높은 침대에 폭신한 배게와 깨끗한 시트에 쌓여, 내 사랑 재봉틀처럼 기분 좋게 덜컹거리는 진동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자니 행복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할 수가 있나. 아무런 정신작용 없이 몸으로만 느껴지는 존재감이랄까. 이 순간이 아까워서 더 즐기고 싶었는데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 즈음에 잠에서 깼다. 아래 침대에서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내려와 복도로 나왔더니 안트가 먼저 깨어 한창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까 초원의 저녁노을이 무척 길고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정말 창밖으론 고상하고 오묘한 빛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톤인톤 조합이 노을빛에 물들어 진기한 기운을 발했다.
배가 고팠다. 이 기차에 카페가 있기는 한데 10칸 정도 떨어져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복도 끝에 있는 물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 먹는 일을 꼭 해보고 싶었다. 한국산 컵라면은 여기서 어느 수퍼에서나 구할 수 있다. 차를 끓이기 위한 뜨거운 물이 어디서나 제공되는 이 곳이 한국보다 더 컵라면에 최적화된 나라인 것 같다.
우리는 기차 복도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뜨거운 컵라면을 훌훌 들이켰다. 복도가 워낙 좁아서 사람들이 지나가면 우리는 벽으로 납짝하게 붙어서야 했다. 우리 칸 미닫이문은 안에서 잠그지 않으면 덜컹덜컹 제 맘대로 열리곤 했다. 안에서 자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우리는 그 와중에도 엉덩이나 발뒤꿈치로 문을 밀고 서 있었다.
좀 있으니 남자분이 목에 수건을 걸고 나왔다. 이불시트와 함께 있던 하얀 수건이 화장실 갈 때 손 닦는 용도란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컵라면이 더 있어서 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먹을 것을 파는 직원이 지나가니까 그 분도 컵라면을 샀다. 어느나라 제품인지 안에 플라스틱 포크가 들어있었다. 셋이 창밖을 향해 나란히 서서 디저트로 과일을 나눠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뜨거운 물을 담은 컵이나 주전자를 들고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몸을 벽에 붙이고 숨을 내쉬어 배를 더 납작하게 만들어야 했다.
노을이 오래 지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깜깜해졌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조금 더 서 있다가 우리는 칸으로 들어왔다. 여자분도 깨어서 어느새 이불을 말끔히 정리하고 내릴 채비를 했다. 우리는 감사 인사와 함께 우리 펭귄 사이트 주소를 알려줬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연락하면 뮌헨 우리집에서 재워준다고 했다. 남자분은 아이들 공부, 결혼 다 시키려면 10년은 걸린다며 우리 보고 그때까지 꼭 살아있어햐 한다는 덕담을 건냈다.
밤 11시에 악토가이 역에서 이 분들과 함께 탄 수많은 직원들이 내렸다. 우리가 탄 침대차량은 5시간 동안 여기서 정차하며 우리를 달고 온 앞쪽 차량에서 분리되어, 우리를 국경의 도스크 역으로 달고 갈 다른 기차를 기다렸다. 그 동안 화장실 사용이 금지된다.
이를 닦을 생각도, 얼굴과 몸에 바른 선크림을 씻어낼 생각도 하지 않고, 우리는 다시 높은 침대로 올라와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 기차가 분리되고 다시 연결되는 과정에서 꽤나 시끄럽고 덜컹거렸지만 튼실한 내 재봉틀처럼 믿음직한 느낌이 들어서 금방 다시 잠들곤 했다.
안트:
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풍경, 드문드문 보이는 인간의 흔적을 따라 페르가나 계곡 쪽으로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시간 감각을 조금 잃어버리다 보니, 오후에 푹 낮잠을 자기도 했다.
기차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긴 편에 속했다. 역에 다 들어가지 못해서 우리는 승강장 끝에서 조금 더 자갈길을 걸어야 했다. 창문은 열 수 없었지만 꽤 깨끗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진은 조금 흐릿하고, 가끔 반사가 비치기도 한다.
노선은 중가리아 협곡을 지나갔다. 중국에서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이어지는 가장 평탄한 길이다. 영어 위키피디아에 나온 Dzungarian Gate 항목에 따르면, 이 길은 옛 실크로드 대상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살아서, 약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들은 남쪽으로 우회해 인적 드문 사막 지대를 지나 카슈가르로 간 뒤, 톈산 산맥의 험준한 고개를 넘어갔다. 사람이 적으니 위험도 적었다. 또 다른 장점은, 산맥을 넘은 뒤 바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계곡을 거쳐 곧장 페르시아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trip/685d047694cb79-5258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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