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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에게 가는 길 51&52- 알라샹커우 2025/8/15-16Our Journey 2025. 8. 16. 19:52
들국:
아침에 침대에서 곡예하듯 내려오는데 다친 어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그런데 아프지는 않고 좀 시원한 느낌이었다. 높은 침대 덕분에 다 나았나? 그럼 그때 호수 보러 갈 때 말도 탈 수 있지 않았을까? 말의 나라 카자흐스탄에 와서 몸 사리느라고 말 탈 기회를 놓친 것이 새삼 아까워졌다.
인스탄트 커피와 차,어제 사온 빵과 과자, 견과류, 과일로 제법 성찬을 차려 맛있게 먹었다. 뜨거운 물만 줘도 이렇게 생활이 편리하고 풍부해지는구나. 서비스로 나온 바깥 풍경은 다시 나무와 풀이 있는 초록빛으로 변해 있었다. 황토빛 벌판을 달릴 때는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세상끝까지 온 것 같았는데 어느새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초록빛으로 변해 있었다.
황토빛 사막과 초원이 많은 나라들을 다니다보니 물과 나무만 봐도 기쁘다. 스탈린이 척박한 벌판으로 강제이주시킨 고려인들이 생각나서 그렇다. 대부분 독립운동을 했거나 토지를 빼앗겼거나, 한국땅에서 살 수 없어 내몰린 사람들이다. 새로운 정착지에 집을 짓고 논밭을 일구자마자 다시 이리로 끌려왔다. 짐짝처럼 끌려오는 과정, 매마른 땅에 처음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남녀노소가 죽었다고 한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땅을 맨 손으로 일구어 자손을 남긴 고려인들. 그 분들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런지 나는 이 나라에서 물기 먹음은 초록빛만 봐도 반갑다.
기차의 종점이자 국경도시 도스티크에 도착했다. 우리는 인파만 따라가면 국경을 넘는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 걸? 우리가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역사가 공사중이라 근방이 길도 없이 다 파헤쳐져 철망으로 막혀 있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막막했다. 안트의 방향감각으로 공사판을 가로질러 결국 조그만 컨테이너 건물과 버스에 도달했다. 오래 기다린 후에 버스표를 살 수 있었다. 우리가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무서운 아줌마가 막 야단치듯 하면서 표를 팔았다. 국경을 넘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 쫄았다.
버스가 30분쯤 달려서 카자흐스탄 국경에 도착했다. 모든 짐을 찾아 검사하고 통과하는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고, 군인들이 위엄있게 굴었다. 줄을 여기 서라, 저기 서라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데 말을 못 알아들으니 좀 무서웠다.
겨우 끝나고 버스에 다시 올라 철조망으로 막혀진 길을 달려 중국 국경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영어 하는 직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어느 도시로 갈 거냐, 그리고 그 후엔? 어쩌고 저쩌고 질문도 많았다.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지 못하는 관광객은 돌려보낸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혹시 대답을 잘 못할까봐 조마조마했다. 군인들은 여권을 위로 들어 한장씩 탈탈 털면서 검사했다.
짐 검사도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안트 카메라에 있는 사진들도 보자고 해서 한참 돌려봤다. 안트가 터키에서 사온 발굴에 관한 책을 무척 심각한 표정으로 한장 한장 다 넘겨봤다. 독일어로 쓰여있는데 봐서 뭘 하려는지? 우리 가방 안에서 나오는 작은 파우치들을 전부 열어보고, 외국돈 남은 것을 모아둔 봉투들을 하나씩 다 열어보면서 어느 나라 화폐가 얼마나 들었는지 물어봤다. 검사는 까다로웠지만 중국 사람들은 내게 다정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까 다 검사한 짐을 다시 가져오라는 말을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도와주었다. 짐검사를 하마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은 벌써 버스에 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죄도 짓지 않았는데 왜 괜히 기를 죽이나 싶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도 정말로 악의적이지는 않았고 그저 자기 일을 할 뿐이었지만, 그 길고 긴 절차가 나를 지치게 했다.
중국의 국경도시 알라샹커우는 신도시 느낌이 물씬 났다. 새로 지었거나 지금 지어지고 있는 건물들과 도로가 널찍하고 깨끗했다. 도로에 자동차는 정말 별로 없었다. 가로수도 공원도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도로 양변에 100미터 간격으로 분리수거 쓰레기통이 정열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관리를 잘 하는 도시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태까지는 국경 시설에서 환전도 하고 새로운 이심도 작동시키고 그랬는데 이번 국경은 그럴 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필이면 말이 유난히 안 통하는 새 나라에서 현금도 없고, 인터넷 데이타도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택시를 탈 수도, 지불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걸어서 호텔로 갔다. 다행히 도보가 깔끔하고 넓어서 짐을 끌고 가기 편했고, 길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
호텔 와이파이로 이심을 개통하고, 알리페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저녁 먹으로 나갈 마음이 안 들었다. 호텔에 붙어 있는 슈퍼에서 중국식 컵라면을 사서 방에서 먹었다. 평소에 컵라면 타령을 하더니 세끼를 연달아 컵라면으로 먹는구나. 중국 컵라면에 혀가 알알해지는 고추가 들어가서 반도 못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 배가 꾸룩거렸다.
다음날 아침, 호텔 조찬을 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왔음을 알겠다. 점심이나 낮에 먹는 뷔페처럼 따뜻한 요리들 일색이었다. 그간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음식이 신기해서 제법 많이 먹었다. 아마도 위구르 사람들일 것 같은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하고 권했다. 말은 하나도 안 통해도 손짓발짓 눈빛으로 서로 호감을 표시했다.
중국은 모든 거례를 알리페이로 한다지만 다니다 보니 현금이 필요할 때가 꼭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남은 돈을 위안으로 바꾸려고 보니까 토요일이라 은행이 전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망고 요구르트 드링크를 마시려고 들어간 가게 아가씨에게 파파고 번역기를 이용해 환전소가 있냐고 물었더니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환전 서비스를 한다고 했다. 현금까지 만들고 나니 그제서야 중국 여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8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로 왔다. 이번에도 4인용 침대칸 위층이다. 밤 세시에 승차한, 징기스칸처럼 생긴 아저씨가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내 밑에서 자던 총각은 한 숨도 못잤다며, 괜히 자기가 우리에게 미안해했다. 내가 밤에 화장실 가느라고 침대에서 내려가다가 총각을 밟았는데 그는 부리나케 핸드폰 손전등을 켜서 내 발밑을 밝혀주었다. 참 싹싹하고 빠릿빠릿한 젊은이다. 이큐가 엄청 높을 것 같다. 이런 젊은이들이 수없이 많을 중국의 앞날이 궁금해졌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trip/685d047694cb79-5258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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