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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피니에게 가는 길 II 88-112 - 26일 시골살이 (2) 2025/9/20-10/15
    Our Journey 2025. 11. 8. 17:00

    들국:

    이 글은 26일의 시골살이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 쓰는, 두서 없는 글이다. 

     

    안트는 아침식사가 중요한 사람이다. 낯선 음식을 잘 먹는 편인데도 아침식사에는 커피와 빵을 반긴다. 커피는 귀촌한 동네 청년 묵이씨가 수제로 볶은 커피와 핸드드립 기구 일습을 주셔서 늘 맛있게 마셨다. 읍내 빵집에서 파는 빵은 다 달아서 우리는 마트에서 토스트를 사서 며칠씩 먹었다. 

     

    추석때 경기도에 사는 연희 언니네 집에 다녀왔다. 독일에 오래 살았던 언니는 각종 곡식을 직접 갈아서 금방 빵을 구워주었다. 우리는 거기서 독일 음식을 실컷 먹고, 언니가 바리바리 싸주는 빵을 소중하게 안고 다시 우포늪으로 내려왔다. 독일에서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빵을 맛있게 먹었다는 악이, 묵이씨와 나눠먹을 생각이었는데 금방 만나지 못해서 차마 주지 못했다. 며칠 지나 신선하지 않은 빵을 남에게 주기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다 먹게 되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냉장고에 보관했더니 꽤 오래 맛이 좋아 우리의 빈약한 아침상을 풍성하게 해줬다. 

     

    자전거를 타고 우포늪 근처에 있는 생태체험관에 갔다. 이 곳에 서식하는 온갖 진기한 동식물을 보고 만지고 느끼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안트가 사진을 잘 찍어둬서 기억을 오래 되살릴 수 있으니 다행이다. 볼 때마다 내가 마치 지금 거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행하면서 너무 많이 보아서 기억이 막 섞이는데 이럴 때 사진을 자주 보면 기억력 연습에 좋다고 안트가 그랬다. 

     

    우리가 살았던 창녕은 우포늪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창녕 근방엔 고분이나 석빙고 같은 옛 고적이 꽤 있었고, 화왕산도 아름답기로 소문 났다. 화왕산은 묵이씨와 함께 올라갔다. 안트가 정말 좋아했다. 안트는 등산을 좋아하고 산 위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화왕산은 정상 부근에 억새가 만발해서 신기했다. 우리는 억새가 핀 산은 처음 보았다. 한국의 산세는 좀 독특하다. 완만한 산이 동글동글 붙어 겹겹이 겹쳐지는 실루엣이 내게는 정답게 느껴진다. 

     

    악이, 묵이씨는 완전 어르신들만 남은 이 동네에 젊음을 발산하는 보배같은 존재일 것이다. 성격 좋고 재주가 많아서 마치 도깨비방망이처럼 여기저기 잘 쓰이고 있다. 덕분에 우리도 신세를 톡톡이 졌다. 시골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을 만나서 안트도 깜짝 놀랐다.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 몇년씩이나 해외를 누비며 현지인들의 집에서 묵으며 자전거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한국으로 자전거여행 오는 외국인들을 집에서 재워주는 봉사를 했다. 나는 남편과 자전거여행을 다니면 체력이 약해서 주로 브레이크를 거는 편인데, 악이씨는 남편과 똑같이 체력 좋고 운동 그 자체를 즐기는, 동등한 길벗이다. 묵이씨는 참 좋겠다. 

     

    나는 시골에 사는 주민들의 삶이 궁금해서 유심히 보았다. 폭우가 지나간 후 어르신들이 단체로 전동차를 타고 이동해서 도로변에 꽃을 심는다던가 화단을 정비하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 딱이 노동을 한다기보다 말벗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기시는 듯 보였다. 일당이 많지는 않지만 신청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좋은 제도인 것 같다. 한국에는 신선하고 세심한 노인복지 제도가 참 많다. 

     

    예전에 마을 가꾸기 프로젝트가 열려서 마을 곳곳에 예술작품이 걸려 있는 것이 재미있다. 집이 낡거나 오래 되었어도 수세미나 박을 올리거나 화단을 가꾸어 정성껏 돌보면 금세 예뻐진다. 시골 마을 풍경은 직접 대할 때보다 이렇게 사진으로 볼 때가 더 정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살던 집은 옛날 기와집을 원형에 가깝게 보수한 집이다. 욕실과 부엌만 따로 달았다. 내부에도 구조가 남아 있는 이런 집을 나는 좋아한다. 현대식 편안함에 길든 사람으로서 적응하는 시간이 걸렸지만 싫지는 않았다. 우리가 살던 집에는 대문에도 현관에도 열쇠가 없었다. 그냥 열어놓고 사는 삶이었다. 누구나 그렇게 사는 마을이라서 우리도 하루종일 열어놓고 나가 있으면서도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팽귄을 찾아라> 사이트에 많은 사진들과 이 글의 독어 버전이 있습니다. 그냥 아래 링크를 꾹 누르시면 돼요. 그 사이트에서 타언어 자동번역을 지원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제가 이 블로그 빨간치마네집에 번역해서 올립니다. 

    https://findpenguins.com/0nbjbfkjcfwpc/footprint/690df877ceb791-66992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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